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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아메리칸 드림을 다시 생각한다

이종호/논설위원

#. 손학규 통합민주당 상임고문이 대선출마 슬로건으로 내 놓은 '저녁이 있는 삶'이 꽤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럴 만도 하겠다. 살벌한 경쟁 속에서 밤낮없이 일하며 고달프게 살아온 한국인들이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좋은 일자리는 늘려 잃어버린 저녁 시간을 돌려주겠다는데 어떻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있으랴.

'나도 한 번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근원적 욕망에 불을 지핀 이 슬로건이 그저 또 하나의 정치 구호에 그칠지 한국 사회의 지형을 바꿀 태풍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유력 정치인이 비로소 삶의 질 쪽으로 눈을 돌렸다는 것만은 점수를 줘도 좋을 듯싶다.

#. 정치는 태평성대를 향한 꿈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온 나라가 평온하고 온 백성이 더 잘 사는 세상을 위해 정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중국인들에게 최고의 태평성대는 요순(堯.舜)시대였다. 공자는 그 시대를 대동(大同)이라 했다. 예기(禮記) 예운편에서 공자는 대동사회를 이렇게 묘사했다.



"노인은 생애를 편안히 마쳤으며 장정들은 누구나 일을 했다. 어린이는 마음껏 성장할 수 있었고 과부와 고아.장애자도 고생없이 살았다…모략이나 절도 폭력을 몰랐으며 아무도 문을 잠그는 일이 없었다."

한마디로 유토피아요 복지천국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요순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다. 전설의 시대나 마찬가지였다는 말이다. 좀 더 현실적인 태평성대는 우(禹).탕(湯).문왕(文王).무왕(武王).성왕(成王).주공(周公) 등 여섯 군자들이 다스렸던 시대였다. 공자는 그 때를 소강(小康)이라 불렀다. 대동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이었다. 다시 공자의 이야기다.

"모든 재화와 노력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됐다. 그래도 기강이 있었다. 임금과 신하 사이는 발랐고 부자 사이는 돈독했으며 형제가 화목했고 부부도 화합했다… 백성들에게 신망을 얻지 못한 지도자는 배척당해 결국은 쫓겨났다."

요즘말로 하면 도덕국가요 책임사회다. 그러나 역사에는 이런 소강사회조차 드물었다. 그나마 20세기 한 때 미국이 비슷하게 근접했다고나 할까.

#. 많은 한국인들이 난세를 피해 미국으로 왔다. 대동까지는 아니어도 소강사회에서나마 살아보겠다며 태평양을 건넜다. '아메리칸 드림'은 바로 그런 이민자들의 꿈이었다.

누구든지 열심히만 일하면 집 사고 차 사고 의식주 걱정없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아메리칸 드림이라면 꽤 많은 사람들이 그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제 아무도 그런 아메리칸 드림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랜 불황 탓이다. 점점 더 야박해지는 인심 탓도 있겠다. 한국에 있었다면 아파트 값도 미국보다 훨씬 더 올랐을 것이고 부부가 함께 아침부터 저녁까지 뼈 빠지게 일하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는 회한도 있어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아메리칸 드림이 완전히 사라졌을까.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복지도 죄다 흔들리는 미국이다. 그래도 여전히 미국 미국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제서야 한국인들이 찾으려 하는 '저녁이 있는 삶'이 그래도 이 땅엔 오래전부터 있어 왔기 때문이다. 한국에 살았더라도 이렇게 많은 시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었을까. 아이의 자라는 모습 이렇게 오래도록 지켜볼 수 있었을까. 잘났건 못났건 가진 것 많든 적든 이렇게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아메리칸 드림은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미국에 사는 나는 오늘도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본다. 싱그러운 나무 향기에 감동하고 청량한 새 소리에 반응하며 즐거워 한다. 적어도 나에겐 이런 것들이 아메리칸 드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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