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살며 생각하며] 흑인이 달리기를 잘 하는 이유

이은미/미드웨스트대 TESOL 교수

올림픽 단거리 달리기에서 네 개의 금메달을 획득했고, 그 외의 세계 대회에서 메달을 휩쓸었던 흑인 달리기 선수 마이클 존슨(Michael Johnson)이 런던 올림픽을 앞둔 요즘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흑인 달리기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선전하는 이유는 이들이 ‘노예의 후손’이기 때문이라는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 자신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선조가 아프리카 출신 노예임을 확인한 그는 선조가 노예로서 생존할 수 있었던 우수한 유전자가 후대에까지 전해졌으므로 달리기에서 유리하다는 괴상한 해석을 했다.

 마이클 존슨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첫째, 과거의 노예제도가 현재 흑인 단거리 달리기 선수들을 배출하는 토양이 되었다는 해석이 엉뚱하다는 것과, 다른 영역에까지 이런 ‘일반화’가 확대 될 경우 인종적인 문제로 불거져 흑인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논리대로 라면 미국 학교에서 흑인 학생들의 학력고사 성적이 대체적으로 백인에 비해서 뒤지는 이유는 흑인의 지능이 낮기 때문이고, 흑인이 받는 평균 연봉이 백인에 뒤지는 이유 역시 흑인이 업무 능력이 뒤지기 때문이라고 누군가가 일반화 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미국에서 영어를 배우고 사용하면서 생활하다 보면 우리는 다양한 영어 사용자와 만나게 된다. 뉴스 앵커같이 깔끔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억양이 심한 사투리 사용자도 만나게 되고, 흑인 액센트를 강하게 사용하는 사람과 대화하기도 한다. 영어 학습자들은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백인들의 영어는 그래도 좀 알아 듣겠는데, 흑인영어는 도통 못 알아듣겠다는 호소를 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심지어 알아듣기 힘든 흑인 영어에 대해서 이런 설명을 하러 든다. “흑인들은 원래 구강구조가 백인과 달라서 백인들의 발음이나 액센트가 불가능하다.”
 
사실 흑인이 강한 액센트를 사용하는 것은 구강구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고등 교육’을 받은 흑인들은 ‘백인 영어’와 ‘흑인 영어’를 마음대로 오가며 구사하는데, 그들의 설명으로는 ‘사회 생활 할 때는 표준어라 할 수 있는 깔끔한 영어를 사용하고, 집에 가서 흑인 가족 친지와 어울릴 때는 흑인 액센트를 구사한다’고 한다.



이는 한국의 어느 지방에서 태어난 사람이 서울에서 사회 생활을 할 때는 깔끔한 표준어를 사용하다가 집에만 가면 바로 지방 사투리로 돌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표준어 익히는 대신에 자신의 사투리에만 안주하는 사람이 있듯, 흑인들 역시 주류사회의 표준어 대신에 흑인들의 독특한 화법과 액센트에 안주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사람이 침팬지가 아니고 사람인 바에는 인종이나 언어와 상관없이 지구상에서 사람이 하는 말은 다 할 수 있는 구조를 타고 났다. 언어뿐 만이 아니다, 달리기나 공부 역시 유전적 요인에서 원인을 찾기 보다는 사회 경제 환경과 개인의 노력을 들여다 보는 쪽이 현명하다.

 에마뉴엘 베일리(Emmanuel Bailey)라는 영국의 흑인 단거리 달리기 선수가 있다. 어느 날 그가 타야 할 버스가 출발하는 것을 발견한 베일리는 버스를 잡기 위해 기를 쓰고 달려 갔다. 물론 그는 이미 성공한 달리기 선수였으니까 무척 잘 달렸고, 운 좋게 버스를 잡아 탈 수 있었다. 그가 버스에 타자 한 백인 승객이 중얼거렸다.

“흑인들은 정말 모두들 잘 달려. 그 단거리 달리기 선수 베일리가 백인 선수들을 물 먹이는 것 좀 보라구. 흑인들은 타고 났어.” 물론 그 백인 승객은 버스를 따라 잡은 흑인청년이 바로 그 유명한 베일리라는 것은 알아보지 못하고 하는 소리였다. 베일리는 그 때의 일을 자서전에 기록했다. 사람들이 자신이 기울인 노력은 무시한 채 흑인이기 때문에 잘 달린다고 판단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흑인이 잘 달리는 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인가? 상관 있다. 흑인에 대한 이런 식의 엉뚱한 일반화로 인해 ‘여자는 원래 힘이 약하다’ ‘아시안은 원래 수학을 잘한다’ ‘한국인은 원래 영어를 못한다’ 등의 엉뚱한 일반화도 얼마든지 가능해 진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인식이 멀쩡한 사람들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