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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공옥진과 도종환

김완신/논설실장

도종환 시인과 '1인 창무극'의 공옥진 여사. 최근 한국에서 도종환 시인은 그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삭제하는 문제로 떠들썩했고 공옥진 여사는 81세의 일기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 지난 26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에 민주통합당 도종환 의원의 시와 산문을 삭제해 줄 것을 권고했다. '정치적 중립성'을 헤친다는 것이 이유였다. 권고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단.학계.정계에서 철회를 요청했다.

보수와 진보 모두가 격렬하게 나서 삭제 권고를 성토했다. 보수성향의 한국작가회도 '검증받은 순수 문학작품을 작가의 신분이 바뀌었다고 교과서에 수록할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된 기준'이라며 힘을 보탰다. 소설가 이문열씨도 문학의 가치를 정치적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치적 성향에 상관없이 문학을 순수성을 지키려고 보수와 진보 양측이 '아주 드물게' 한 목소리를 냈다. 이념의 싸움판으로 변모한 한국사회에서 의외의 사건이다. 결국 평가원은 1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법 위반여부를 문의한 결과 '문제없다'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궁색한 철회 이유를 발표했다.



일제를 거쳐 분단의 반세기를 넘은 한국에서 문학을 비롯한 예술의 순수성은 정치논리와 이념에 얼룩져 왔다. 지난 2008년 민족문화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록에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현대무용의 선구자 최승희가 포함돼 있다. 동요 '고향의 봄'의 작사가 이원수도 반일문학으로 옥고까지 치렀지만 한때 친일문학가로 매도됐었다.

해방 이후의 이념 논쟁은 더욱 치열해 수많은 사회주의 성향의 예술인이 한국문화사에서 40년 가까이 거론되지 못했다. 이번 교과서 문제는 정치사상과 이념이 자유로운 지금도 예술이 여전히 이념놀음에 좌우되는 후진적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 한국교육평가원이 교과서 삭제 권고를 철회하기 하루 전인 9일 공옥진 여사가 타계했다. 판소리 명창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식모생활 이혼 비구니 수계 등 굴곡진 삶을 살았다. 지방의 장터를 떠돌다가 70년대 처음 중앙무대에 등장한 그는 특유의 몸짓과 입담으로 서민의 울분과 애환을 풀어내면서 이름을 알렸다. '1인 창무극'이라는 독창적인 영역을 개척해 세상을 향한 한과 설움을 쓴소리에 담았다.

아시아인 최초로 링컨센터에서 단독공연하고 유럽에도 이름을 날렸지만 노년은 불우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교통사고도 당했다. 2004년 공연을 마지막으로 세인의 관심에서 잊혀졌고 타계 전까지는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43만원의 정부 보조비로 생활해 왔다.

지인들이 무형문화재 지정을 추진했지만 예술계 기득권층의 벽에 부딪쳐 성사되지 못했다. 교과서 삭제 문제는 연일 정치권을 들끓게 했지만 공옥진 여사 타계는 낡은 흑백사진으로 조용히 추모됐다.

# 교과서 삭제 철회결정은 당연하다. 그러나 '서정시인' 도종환을 말하면서도 어느 누구도 정치인이 아닌 시인으로 그가 온전히 남았으면 하는 아쉬움을 표하지는 않는다. 그의 '서정'은 정치판 우군(友軍)들의 교과서 삭제를 반대하는 근거로 이용됐다.

몸뚱이 하나로 척박한 예술의 길을 걸어왔던 공옥진은 죽음도 쓸쓸히 맞았다. 그의 죽음을 보면서 정치에 한 자락이라도 걸쳤다면 떠나는 길이 그리 적막하지는 않았으리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도종환 국회의원의 교과서 삭제 문제로 연일 언론들이 요란한 소리들을 쏟아내는 것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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