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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순전히 '안철수 책' 때문에…

[LA중앙일보] 발행 2012/07/26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2/07/25 18:25

이종호/논설위원

'한국 이야기' 책을 냈다 시기가 좋지 못했다 그래도 흘린 땀은 기뻤다
안철수가 점점 마뜩잖아지는 모양이다. 보수 논객들의 논조가 눈에 띄게 바뀌었다. 너무 눈치를 본다. 잔꾀를 부린다 정치 경험이 없다 왠지 불안하다 등이 그것이다.

자꾸 들으면 세뇌되기 마련이다. 처음 열광했던 사람들까지 하나 둘 돌아서는 것 같다. 특히 중장년층의 변화가 눈에 띈다.

그럼에도 안철수는 여전히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에 있다. 식상한 야당 기대할 것 없는 여당에 등돌린 30~40대의 지지는 압도적이다. 불안한 미래 불공평한 현실에 좌절한 20대 젊은이들의 응원 또한 견고하다. 박근혜 대세론에 맞설 대항마는 그래도 안철수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안철수가 책을 냈다. 제목이 '안철수의 생각'이다. 반응이 폭발적이다. 닷새 만에 18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초판 4만부는 발매 첫 날 동이 났다. 내가 진짜 놀란 것은 이 4만부라는 숫자다.

요즘 사람들 책 잘 안 읽는다. 바빠서 책 볼 틈이 없다 읽고는 싶지만 습관이 들지 않아 힘들다 등이 이유다. 스마트폰.인터넷.TV 같이 더 재미있는 것들이 널린 탓도 있겠다.

출판사들이 모를 리 없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팔리지가 않으니 1000부 2000부 찍는 것도 조심스럽다는 푸념이 엄살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4만부 초판이 단숨에 매진이라니. 이대로라면 밀리언셀러도 가능하다며 출판사측은 흥분하고 있다.

100만부라? 꿈같은 얘기다. 지난 해 100만부 넘게 팔린 책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정도였다. 화제의 전기 '스티브 잡스'는 50만부를 기록했다. 그밖에 유명 작가의 소설 정권 풍자 정치평론 불확실성 시대 불안한 영혼을 위로하는 영성가들의 책이 꾸준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베스트셀러를 뉘집 강아지 이름 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들어둬야 할 게 있다. 한국출판문화협회의 통계자료다. 이에 따르면 2011년 현재 등록된 출판사는 3만8170개다. 이중 한 권이라도 책을 낸 곳은 2651개였고 종류는 4만4036종이었다. 총 발행부수는 1억 900만부 종류 당 평균 발행부수는 2488부였다. 여기엔 아동서적이나 만화책 학습 참고서도 포함되어 있다. 저자가 자기 돈으로 내는 자비출판도 적지 않고 특정 후원금으로 만드는 홍보용 책도 많다.

이쯤 되면 알아차려야 한다. 하루에 100종이 넘게 새로운 책이 쏟아져 나오는 출판시장에서 유료 독자의 눈길을 잠시라도 붙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초판이라도 다 팔려 출판사가 손익분기점을 넘긴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말이다.

부끄럽지만 이 대목에서 고백을 해야겠다. 지난 주 안철수 책이 나올 즈음 내 책도 한국에서 함께 나왔다. 신문 블로그 등에 썼던 글 중 한국과 관련된 것만 추려서 다듬고 더러 새 글도 보탰다. 제목은 '그래도 한국이 좋아(포북 발행)'이고 '우리가 미처 몰랐던 한국.한국인을 말하다'라는 부제가 붙었다. 출판사에선 '재미언론인 이 아무개의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대한민국 보고서'라는 문구로 홍보를 하고 있다.

많은 출판사들이 '이번만은' 이라며 또 다시 책을 낸다. 저자들도 '내 책만은'이라며 한사코 책을 쓴다. 솔직히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시기가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안철수 책 태풍이 몰아친 이때라니.

그렇지만 주눅들지 않기로 했다. 출판가 사정은 익히 아는 바이니 대박 환상은 애초부터 접어두었다. 거대한 전함 옆에 초라하게 떠있는 똑딱선일망정 나름대로의 지적 탐색이자 땀의 결과가 실렸으니 그런대로 의미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설령 나의 책이 소리 소문 없이 묻힌다 한들 그것은 순전히 안철수 때문이었다 라고 기막히게 둘러댈 핑계거리까지 생겼으니 뭐가 걱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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