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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현의 시가 있는 벤치] 나비를 읽는 법 -박지웅

임창현/시인·문학평론가

나비는 꽃이 쓴 글씨
꽃이 꽃에게 보내는 쪽지
나풀나풀 떨어지는 듯 떠오르는
아슬한 탈선의 필적
저 활자는 단 한 줄인데
나는 번번이 놓쳐버려
처음부터 읽고 다시 읽고
나비를 정독하다, 문득


문법 밖에서 율동하는 필체
나비는 아름다운 비문임을 깨닫는다
울퉁불퉁하게 때로는 결 없이
다듬다가 공중에서 지워지는 글씨
나비를 천천히 펴서 읽고 접을 때
수줍게 돋는 푸른 동사들
나비는 꽃이 읽는 글씨
육필의 경지를 기웃거릴 때
바람이 훔쳐가는 글씨

꽃이 쓴 글씨, 꽃이 꽃에게 보내는 쪽지, 탈선의 필적, 문법 밖에서 율동하는 필체, 공중에서 지워지는 글씨, 아름다운 비문, 바람이 훔쳐가는 글씨.

시인은 나비를 이렇게 읽고 있다. 어쨌든 나비는 꽃에서 꽃으로 향기와 꿀을 나르고 다니는 꽃 사랑 꽃 편지 우체부 다. 겁 없이 무한 창공과 바다 위를 나는 나비, 그들이 하늘과 산의 높이와 바다의 깊이를 알았을 리 만무하다. 나비가 인생살이보다 낫구나. 참으로 문법 밖에서 율동하는 필체, 아름다운 비문, 네가 나비구나. 우리도 꽃의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나비 같은 시인. 그 여자와 그 남자의 그런 꽃과 나비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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