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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김정일의 처, 김정은의 부인

이종호/논설위원

언어는 변한다. 대중이 많이 쓰면서 원래 뜻과 달리 쓰이는 경우도 흔히 있다. 식당 여자 종업원을 '언니'나 '이모'라고 부르는 것이나 아무 남자에게나 '사장님'이나 '선생님'으로 호칭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원래 스승의 아내를 지칭하던 '사모(師母)'가 목사의 아내를 부르는 말로 쓰이는 것이나 LA자바시장 같은 데서 사장 아내에 대한 호칭으로 자리를 굳힌 것도 마찬가지다.

'부인(夫人)'이라는 말도 그렇다. 원래 부인은 다른 사람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아무에게나 부인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특히 손아래 사람이나 특별한 관계가 없는 사람의 배우자에게는 쓰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자칫 잘못 쓰면 듣는 사람을 낮추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관례가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가수 박진영의 노래 중에 '청혼가'라는 게 있는데 "니가 나의 부인이 돼 줬으면 해"라고 시작한다. 이처럼 자기 아내를 부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심지어 자기 자신을 "저는 XXX의 부인 OOO입니다"라고까지 말하는 여성도 있다. 모두 우습고 민망한 일이다.

북한 김정은의 아내에 대한 호칭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김정은 옆에 자주 등장하는 여성이 김정은의 부인이며 이름은 리설주인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대부분의 한국 매체들이 이런 식으로 보도하고 있고 사람들도 무심히 그렇게 따라 부르고 있다. 여기서 '부인'이라는 표현이 과연 적절할까.



냉전시대 때 북한 최고 권력자의 배우자를 남한에선 한 번도 부인이라고 쓴 적이 없었다. 그냥 '여자'라고 불렀거나 언론에서도 잘 해야 '처(妻)' 정도로 표현했다. 김일성 때도 그랬고 김정일 때도 그랬다. 그런데 김정은 대에 이르러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부인'으로 높여 부르고 있으니 이상하다는 말이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퇴색하고 북한과의 교류도 활발해지면서 북한 인사에 대해 나름대로 호칭을 붙여주는 것이 현실이긴 하다. 아무렇게나 부르던 김일성에게도 언젠가부터 꼭 '주석(主席)'이라는 직책을 붙였고 김정일 역시 국방위원장 또는 위원장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의 부인'이 특별히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정은에 대해 온갖 악평을 늘어놓는 사람들까지 그의 배우자에겐 꼬박꼬박 부인이라 부르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말 어법을 몰라서 그렇게 한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거기다 아직은 국민정서상 그것이 불편한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안 그래도 험한 말 상스러운 말로 국어오염이 심각한 요즘이다. 반대로 또 한쪽에선 지나친 존댓말 때문에 우리말 어법이 파괴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고객님 사이즈가 없으십니다' '어머님 옷 색깔이 참 예쁘시네요' '아버님 환불은 안 되십니다'처럼 아무데나 '님'자 '시'자를 붙이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아랫사람에게 '여쭤보는' 것도 그렇고 새파랗게 젊은 아낙이 '슬하'에 자녀를 둔다는 표현도 위 아래 분간 못하는 처사다.

과거 수직 사회와 달리 수평적 평등사회가 되면서 존대법에도 혼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은 있어야 한다. 모르면 배워야 하고 틀리면 아는 사람이 가르쳐야 한다. 영어 한 줄 틀리면 그렇게 부끄러워하면서 우리말 바로 쓰지 못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김정은 부인 리설주 슬하에 자녀까지'라고 표현된 기사를 읽으며 난감해하는 내가 이상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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