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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져도 괜찮아, 젊은 인생아'

김완신/논설실장

문인수 시인의 작품에 '장미란'이라는 시가 있다.

'장미란 뭉툭한 찰나다. 다시는 불러 모을 수 없는 힘 이마가 부었다. 하늘은 이때 징이다. 이 파장을 나는 향기라 부른다. 장미란 가장 깊은 땅심을 악물고 악물고 빨아들인 질긴 긴 소리다 소리의 꼭대기에다 울컥 토한 한 뭉텅이 겹겹 파안이다. 그 목구멍 넘어가는 궁륭을 궁륭 아래 깜깜한 바닥을 보았다// 장미란!// 어마어마하게 웅크린 아름다운 뿌리가 움트는 몸이 만발 밀어올린 직후가 붉다.'(계간 '창작과 비평' 2009년 여름호 행 구분없음)

처음 시를 읽었을 때 '장미란'이 '장미란 OO이다'의 장미란인지 여자 역도선수 장미란인지 혼동이 됐다. 어느 것을 대입해도 시의 뜻은 통했다.

시에는 사연이 있다. 2007년 미당문학상 수상자 문인수 시인은 장미에서 장미란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뿌리의 힘으로 지표에 꽃을 '밀어올리는' 장미와 바벨을 들어올리는 장미란의 모습에서 같은 아름다움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장미란은 런던올림픽 여자역도 최중량급에 출전했지만 메달권에 들지 못했다. 장미란은 플랫폼에 내려와 끝없이 눈물을 흘렸다. 바벨에 키스를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도 했다. 정들었던 바벨과의 고별이었다. 이를 지켜 본 문 시인은 '생애에 가장 아름다운 이별 장면'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장미란과 무쇠씨'라는 제목의 시에서 '장미란 모두 활짝 마지막 시기를 들어 올리는 것/ 마지막 시기가 참 가장 붉고 아름답다'는 격려를 그녀에게 헌사했다.

스포츠 경기에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있다. 승자에게는 영광과 환희가 패자에게는 좌절과 슬픔이 돌아간다. 스포츠의 목적이 단지 승패를 가리는데 있다면 감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승패나 기록보다도 더 빛나는 스토리가 있고 감동의 원천은 거기에서 나온다. 특히 올림픽과 같이 스포츠맨십을 추구하는 경기에서는 승패를 떠나 선수들의 이야기는 감동을 준다.

런던올림픽 사격에서 진종오의 첫번째 금으로 출발한 한국은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7연패라는 위대한 기록을 남겼다.

사격의 김장미는 금빛 신호탄으로 메달 행진을 이어갔고 펜싱의 김지연은 신아람의 오심판정에 금메달로 답했다. 유도의 송대남은 후배들에게 밀려 30이 넘도록 그늘에 있다가 체급을 올리는 승부수로 금메달의 한을 풀었다.

작은 키에 아이들의 놀림감이었던 양학선은 지긋지긋했던 가난을 딛고 올림픽 체조경기장에 사상 최초로 애국가를 울려퍼지게 했다.

훈련으로 지친 아들에게 '맘껏 울어라 젊은 인생아 져도 괜찮아'라고 했던 양학선 어머니의 노래도 가슴을 적신다.

승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른쪽 팔꿈치 인대를 다치면서 유도 동메달 결정전에서 좌절해야만 했던 왕기춘 선수 팔이 뒤로 젖혀져 꺾일 때까지 바벨을 놓지 않았던 사재혁 선수의 투혼은 어느 메달보다도 빛이 난다. 올림픽의 목적은 순위를 정하는데 있지 않다. 그들의 지난 시간 쏟은 순수한 열정은 메달 없이도 소중하다.

반환점을 돌아선 런던올림픽은 각본없는 희로애락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연이은 메달 행진에 기뻐했고 심판들의 오심에 분노했고 선수들의 눈물에 슬퍼했고 온국민의 하나된 응원에 즐거워했다. 한국민의 열렬한 응원 속에 펼쳐졌던 축구 4강전에서 브라질에 패했지만 올림픽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감동의 스토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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