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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포커스] '좀비'라고 불렀던 융자담당자

김동필/S&P 팀장

미국의 대형은행들에게 2008년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한해다. 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위기에 처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긴급 구제금융으로 살아나긴 했지만 체면은 구겼다.

최대 은행이던 BOA가 450억 달러를 씨티뱅크와 골드만삭스도 각각 450억 달러와 100억 달러를 지원받았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세금이 대형은행 구하기에 투입된 것이다. 이들 은행이 위기에 빠진 것은 방만한 경영과 누적된 부실대출 고위험 투자 등이 원인이었다. 경영진의 잘못을 세금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이 있었지만 정부의 '경제 살리기 먼저'라는 명분에 밀렸다.

당시 하도 혼쭐이 나서인지 요즘 이들 은행의 몸조심이 심하다. 감독기관의 깐깐해진 관리.감독 탓도 있겠지만 쉽게 돈을 풀지 않는 모양이다. 특히 주택구입에 나선 모기지 융자 신청자들의 불만이 높다. 과거에 비해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훨씬 많아진 것은 물론 승인까지 소요되는 기간도 상당히 길어졌다. 모기지 융자 조사기관들의 분석에 따르면 과거 평균 20일 정도 걸리던 승인기간이 요즘은 90일까지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신청자들은 그야말로 진이 빠질 노릇이다.

최근 어려운 모기지 융자를 실제로 경험했다. 모 대형은행에 융자를 신청했다 마음 고생을 한 탓이다. 이자율 등 융자 상품이 좋아 신청 당시에는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생각이 '판단 실수'로 바뀌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융자 심사 담당자의 서류 요구가 끝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젠 끝났겠지' 싶으면 추가 서류를 요구하고 서류를 제출하면 하루나 이틀 후 또 요구했다. 이처럼 짜증나는 일이 몇 차례나 반복되다 보니 나와 아내는 융자 심사 담당자를 '좀비'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심했다는 미안함은 있지만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지금도 화가 난다.



더욱 화가난 것은 그 담당자의 전문성 부족과 불친절이었다. 융자 신청자의 상환능력을 이모저모 따져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같은 서류를 서너번씩 요구할 때는 은행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나만 이런 일을 겪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알고 보니 이 은행에 불만을 가진 고객들이 개설한 웹사이트까지 있었다.

웹사이트에 게재된 내용들은 그야말로 가지각색이었다. 그중 모기지 융자 관련 부분을 살펴보니 나와 비슷한 사례들도 많았다. 승인지연으로 거래가 깨졌다는 사람 꼭 에스크로 마감일 2~3일을 앞두고 카드빚 상환 등을 요구해 3차례나 에스크로를 연기하다 결국 다른 은행으로 옮겼다는 고객도 있었다. 세금(구제금융)으로 살아남은 은행이 이럴 수가 있느냐며 분통을 터트리는 경우도 있었다.

은행은 고객들이 맡긴 자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수익을 올리는 곳이다. 따라서 영업규정이 까다롭고 감독기관의 감사도 깐깐할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규정을 위반하면 바로 제재조치가 내려진다. 은행원들이 보수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규정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규정에만 집착해 고객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문제다. 더구나 본인의 전문성 부족이나 태만으로 발생한 문제를 고객에게 떠넘기는 태도는 은행 전체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것이다.

요즘 모기지 융자받기가 어려워진 것이 꼭 규정 강화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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