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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도·둑·들…'훔친 그림'이 맛있다

[LA중앙일보] 발행 2012/08/22 미주판 26면 기사입력 2012/08/21 17:25

모나리자·절규 도난당한 후 최고가
도둑들과 '세기의 그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루브르 박물관:77x53 cm:1503~1506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루브르 박물관:77x53 cm:1503~1506년)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오슬로미술관:83.5x66 cm:1893년)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오슬로미술관:83.5x66 cm:1893년)

모나리자
"애국심 때문에 훔쳤다"
유리공의 도난 해프닝

절규
"느슨한 보안에 감사"
함정수사에 의해 검거


1966년 오드리 햅번 주연의 '백만 달러의 사랑' 피어스 브로스넌의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1999) 숀 코너리와 캐서린 제타존스의 '앤트랩먼트' 그리고 최근 한국에서 4주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도둑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미술관 안에 든 도둑들의 이야기다.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할 만큼 대도들 이야기는 미술관을 거쳐간다. 왜 꼭 미술관일까? '명화'는 왜 도둑들이 눈독을 들이는가. '명화'는 값이 비싸다.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희소성 때문에 천문학적인 가격이 매겨진 그림들도 많다. 명화는 아름다움으로 그치지 않고 인간 탐욕의 대상이 된다. 숨겨둔 검은 재산의 가치를 담으며 뒷거래를 통해서라도 얻고자하는 이가 반드시 있다. 또 하나 진품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의 위조 작품들도 '명화' 뒤로 짙은 그림자를 만든다. 마치 진리와 위선의 날선 두 얼굴이 미술관 안에 있고 영화는 그 안에서 거짓과 스릴있는 사랑을 버무려낸다. 그리고 관객은 보통의 삶과 일정한 거리를 둔 미술관 안의 도둑들이 주는 매력에 관대하다.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 실제 상황으로도 벌어진다. 미술관과 도둑들의 악연은 지금까지도 끈질기게 이어지며 '세기의 그림'들은 수난을 맞는다.

# 방탄 유리에 둘러싸인 '모나리자'

1911년 8월22일 바로 오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모나리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경찰이 인근 나라에까지 수사망을 넓히며 조사했지만 그림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이 당시 경찰은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까지 용의선상에 올렸으나 범인은 아니었다. 2년 뒤 드디어 범인이 잡혔다. 모나리자 보호액자를 만들 때 유리공이었던 빈센초 페루자가 바로 범인이었다. 그는 당시 미술관에 경비원과 방문객이 없는 시간대를 노려 고작 20분 만에 벽에 걸린 모나리자 그림을 떼어 유유히 빠져나갔던 것이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절도 사건이었지만 페루자가 받은 형량은 고작 7개월이었다. 페루자는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가 이탈리아에 있지 않고 프랑스에 있다는 것에 격분하여 사건을 저질렀다고 당당히 주장했다. 그러나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프랑수아 1세에게 금화 4000개를 받고 팔았기 때문에 소유는 프랑스의 것이었다. 이 거대한 도난사건은 엉뚱한 애국심 해프닝으로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도난일인 8월22일이 '모나리자'에겐 제 2의 생일과도 같았다. 그 전까지는 모나리자가 다른 걸작들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사건 후 언론에서 모나리자와 다빈치의 기사들을 쏟아내면서 세간의 관심이 모나리자에 집중됐다. 그 때부터 이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명화 중의 명화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지금도 하루 수만 명의 관람객들이 이 그림을 보러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다. 특수 경비원도 배치되어있고 방탄유리로 덮여있으며 보험금도 2억달러에 달한다.

# 뭉크의 '절규' 불운한 운명

8년 전 오늘 또다시 뭉크의 작품 두 점 '절규'와 마돈나'가 도난당한다. 노르웨이 뭉크 미술관에서 검은 복면을 한 남자가 총을 들고서 관람객들을 위협하는 사이 다른 한 남자는 벽에서 그림을 떼어 차에 싣고 빠져나갔다. 범인들은 대담하게도 휴일 낮 관람객들이 가장 많은 시간에 들이닥쳐 여유롭게 가져갔고 늑장출동한 경찰은 단서를 찾지 못한 채 상당한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범인들을 검거하고 작품을 회수했다. 이 작품 역시 무사히 돌아왔으나 회수 경위는 비밀에 부쳐졌다. 검거의 뒷이야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채 범인들은 다소 가벼운 형량을 받았다. 노르웨이 일간지들은 예술작품을 볼모로 협상을 주도한 일종의 예술테러리즘 사건이라고 일제히 성토했다.

명화 '절규'는 이전에도 한 차례 수난을 겪었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개막일에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걸려 있던 다른 버전의 '절규'가 도난당했다. 새벽에 창문을 뜯고 침입한 범인들은 "느슨한 보안에 감사드린다"는 쪽지까지 남길 정도로 대범했지만 3개월 후 함정수사에 의해 검거되었다. 그러나 작품들은 상처를 입었다. 습기로 손상을 입고 테두리 부분은 찢기고 마돈나의 팔엔 두 개의 구멍이 난 채로 돌아왔다.

인간의 절망적 상태를 표현한 뭉크의 작품 속에서 뭉크는 이런 메모를 남겼다.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그 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처럼 붉어지고 나는 한 줄기 우울을 느꼈다. 나만이 공포에 떨며 서 있었다. 마치 강력하고 무한한 절규가 대자연을 가로질러 가는 것 같았다." 그의 작품들의 절규는 주인을 닮아서일까. 불운한 운명의 '절규'는 불행한 사건들에 연루되면서 오히려 몸값이 뛰어 1억 2000만 달러에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되었다.

영화와 다른 미술관, 때론 영화같은 미술관 이야기

'세기의 금고 털이범' 애덤 워스, 그가 사랑한 여인은?



노르웨이 미술관에서 뭉크의 그림을 훔쳐 유유히 달아나는 범인들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후 삼엄한 경비에 둘러싸인 모나리자.

◆유명 미술관 보안, 영화와 다르다?

오늘날 국제 밀거래에서 마약과 무기처럼 제법 큰 시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미술품 뒷거래다. 그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밝혀진 것만 수십만 점의 미술품들이 도난당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고가의 미술품들이 적외선, CC TV, 첨단 경보장치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헐리우드 영화처럼 치밀한 준비를 한 전문 도둑들만이 할 수 있는 지능적 범죄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매우 허술하다. 뭉크의 ‘절규’도 철사줄 하나만 달랑 끊으면 가져갈 수 있었다. 2010년 이집트 미술관에선 경보장치의 고장으로 고흐의 작품들이 도난당했다. 같은 해에 파리의 현대미술관에서도 1억 달러 이상에 해당하는 피카소와 마티스의 그림들이 사라졌다. 첨단 보안 시설이 있었으나 역시 수 개월 전부터 고장이었다.

영화와 또 다른 점은 전문털이범들의 소행보다는 미술관이나 미술품 소장자의 내부 인물들이 범인이라는 사실이다. 1998년 프랑스 니스의 보자르 미술관에서 모네의 작품들이 도난당했는데, 수사 결과 이 미술관 큐레이터의 자작극임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한국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내부 직원들이 알버르트 쇤크의 작품을 빼돌린 것이 적발되었다. 결국 미술관 범죄는 ‘그림을 아는 자’의 소행일 경우가 상당히 많았던 것이다.

미술 도난품은 돌고 돈다. 미국의 대표적 일러스트레이터 노먼 로크웰의 작품이 도난당한 지 33년만에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의 자택에서 발견되었다. ‘러시아 교실’이란 이름의 이 작품은 1973년에 전시회 중 도난당했는데, 스필버그 측 직원이 스필버그 개인 소장품 중 이 그림이 있다고 신고해 찾아내게 되었다. 합법적인 경로로 구입한 스필버그는 도난품인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헐리우드 스타들은 유난히도 미술품 컬렉션에 열을 올리기 때문에 경매사 스페셜리스트들은 항상 그들을 주목한다.

◆훔친 그림과 사랑에 빠진 범죄계의 나폴레옹

18세기 ‘데먼셔 공장부인’이라 불린 조지아나 캐번디시는 영국 최고의 미인이라 불리면서 사교계에 스캔들을 뿌렸던 인물이다. 다이애나의 조상이기도 한 조지아나는 공작부인이면서 미래 수상의 정부이기도 했지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 후 한 세기가 지나 경매에 그녀의 초상화가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 돌아온 듯한 조지아나를 보기 위해 몰렸고 미국의 갑부 스펜서 모건에게 낙찰되었다. 그런데 그 그림을 보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토마스 애그뉴 미술관에 잠시 전시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몇 주 후 1876년 5월 어느날 밤 한 사내가 미술관 창문을 뜯고 들어와 그림을 돌돌 말아 코트 안에 넣고 사라진 사건이 발생했다. 그 도둑은 당시 악명을 떨치던 애덤 워스였다. 셜록 홈즈의 적 모리어티 교수의 모델이 되었던 대도둑. 그는 동생의 석방을 위해 그런 일을 저질렀으나, 그림이 쓸모없게 되자 그냥 집에 보관하게 됐다. 그런데 그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데먼셔 공작부인은 에덤 워스의 옛 연인인 ‘키티 플린’의 얼굴과 오버랩되었다. 한 눈에 사랑에 빠졌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애절한 추억이 데먼셔 공작부인을 바라보며 점점 애틋하게 되었다.

애덤 워스는 25년간 자신이 훔친 그림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여행을 갈 때도 지니고 다녔고, 결혼한 후에도 비밀 창고에 아내 몰래 숨겨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정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데번셔 공작부인’ 그림을 반환하기로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림을 반환한 지 10개월도 채 되지않아 애덤 워스는 58세의 나이로 홀연히 사망하게 되었다.

에덤 워스가 그림 도난범이란 사실이 밝혀졌을 때 모두가 놀란 것은 그가 그림과는 전혀 무관한 범죄계의 나폴레옹이라 불린 대도 중의 대도였기 때문이다. 도난 미술품과 관련된 애덤 워스의 삶은 가장 영화와 닮아있는 이야기였다.

이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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