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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우린 지금 어떤 이민사를 쓰고 있나

백정환 기자/사회팀

축구 올림픽대표팀이 전해준 감동이 아직도 잔잔히 남아 있다. 오심으로 시작됐던 태극전사의 투혼은 남자축구팀의 한일전 승리와 동메달 획득으로 화룡점정을 이루었다.

특히 박종우 선수의 독도 세리머니는 불볕더위로 고생하는 한국과 미주 한인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한편에서는 우리 땅 독도를 우리 것이라 말해야 하는 슬픈 현실도 느낄 수 있었다.

그날의 감격과 슬픔은 지난 해 12월 대한인국민회관 유물 실사작업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빛을 본 미주 항일독립운동가들이 남긴 유물을 대했을 때와 비슷했다. 교회 한 편 작은 방에 놓여진 수천 점 유물은 길게는 100여년 짧게는 40~50년 세파를 이겨낸 것이었다.

역사학자도 전문가도 아닌 마당에 그 가치를 온전히 알 수는 없었으나 억울하게 강탈당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애쓴 애국지사들의 소중한 기록이기에 북받치는 감동을 어쩔 수 없었다. 유물 중에는 농장에서 고생하며 모은 돈을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내 달라며 한인들이 기탁한 독립운동자금 영수증도 있었다. 또 전명운 의사의 변호사비를 마련하기 위한 모금운동이 펼쳐졌던 것도 알 수 있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아 직접 제작해 한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뒤 대한독립운동사연구소 홍선표 박사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상급 자료들이 상당수 포함됐으며 미주 항일독립운동사를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홍 박사는 올해 5월 다시 LA를 찾아 2차 실사작업을 하기도 했다.

대한인국민회에서 쏟아진 유물들은 나라 잃은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들이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조국을 되찾기 위해 흘린 피와 땀의 기록들이다. 첫 유물실사 작업을 마친 지 9개월여가 흘렀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우선 유물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검증되지 않았다. 또 유물 보관장소에 대해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과 소유권을 가진 교회 그리고 한국 정부간에 대화도 계속되고 있다. 도산 안창호 기념관 흥사단 광복회관 등 한인 이민사와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를 보존하는 문제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한인들의 관심이 그에 따르지 못하는 것이다. 바쁜 이민생활에 치이고 더욱이 요즘 같은 불황기에 지나온 과거를 되새기는 것은 어쩌면 현명하지 못할 수도 있다. 미국의 제도에 맞춰 살다보니 자녀들도 점점 한국인의 자부심과 긍지를 잃어가는 것만 같다. 가끔 월드컵 축구 WBC 야구 올림픽 등 큰 국제 경기가 열리면 일시적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도 되살아 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옅어지고 만다.

하지만 자녀들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한글을 가르치는 1세들 역시 줄어들지 않는 것이 희망을 갖게 한다. 이민 선조들의 뜨거웠던 항일독립운동 정신에는 못 미칠지라도 우리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한인 이민사를 써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선조들의 유산과 문화를 좀 더 아끼고 지킨다면 전 세계에 태풍처럼 불고 있는 한류의 불길도 더욱 거세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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