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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갑자기 퍼머하고 나타난 친구

이종호/논설위원

덩치 커진 아들이 작아져 못 입겠다며 옷을 한 무더기 내놨다. 티셔츠 청바지 재킷 등 멀쩡한 것들이다. 격세지감이라고 해야 하나. 몇 년을 대물림해 입거나 늘여 입고 줄여 입던 것이 당연시되던 옛날이 떠올랐다. 팔뚝까지 올라간 소매에 바짓단은 발목까지 멀뚱 올라가도록 입었던 교복도 기억이 났다.

아까워서 몇 벌은 내가 입기로 했다. 입어보니 의외로 잘 맞는다. 집사람이 한마디 한다. "대학생 같아요. 이제부터 당신 옷은 사지 마세요." 아들도 거든다. "완전 딴 사람이야!" 어색했지만 싫진 않았다. '그래 잘됐다. 이제부터 이렇게 입지 뭐. 좋았어 젊은 오빠 스타일!'

아뿔싸. 그러고 보니 그 동안 아버지 모습이 아이 눈엔 어떻게 비쳤을까 싶었다. 집에만 오면 펑퍼짐한 트레이닝복에 후줄근한 티셔츠. 동네 마실을 가도 몇 년 째 입는 헐렁한 반바지에 역시 몇 년을 신고 있는 낡은 슬리퍼 혹은 구닥다리 운동화. 아 뭇 젊은이들이 그토록 지탄해 마지않는 '아줌마 스타일'과 동급의 바로 그 '아저씨 스타일'이다.

싫었을 것이다. 민망도 했을 것이다. 잠깐이지만 그래서 아버지의 변신을 더 반색했나 보다. 그렇다고 수십 년 굳어진 '아저씨'가 하루 아침에 '꽃중년'으로 달라질 수 있을까. 겉모습이야 어찌어찌 바꾼다 해도 고리타분한 행동이며 낡아빠진 사고방식은 또 어쩌나.



누군가의 스타일이란 그가 살아온 내력과 취향 개성과 기질의 총체적 발현이다. 그것을 버리고 새로운 스타일을 선택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일생일대의 모험이고 도전이며 때론 존재의 부정으로까지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니 무턱대고 바꿀 일은 아니다.

야생동물은 야생에서 뛰어 놀아야 한다. 동물원 동물들이 매가리 없이 비실거리는 것은 본래 자기 스타일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어서이다. 철새라면 때가 되면 날아가야 한다. 계절이 바뀌었는데도 떠나지 않는다면 웃기는 새가 된다. 지구 온난화로 요즘 한국엔 그런 새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물어봤다. "너는 겨울인데 왜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지 않니?" 그 새가 대답했다. "여기가 좋은데 내가 왜 가리?" 그 때부터 그 새를 '왜가리'라고 불렀다나 어쨌다나.

자기 스타일을 잘 지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가 불편을 겪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럴 때는 포기도 해야 한다. 변신도 필요하다. 리더의 자리에 올랐을 때 다수의 의견을 포용해야 할 때 더불어 소통이 필요할 때가 그럴 때다. 고집불통 박근혜 애매모호 안철수 될 듯 말 듯 문재인 만사형(兄)통 이상득…. 이런 말들은 모두 자기 스타일만 고집하다 얻은 자업자득의 이미지다.

2년 전이었던가. 친구가 갑자기 머리 모양을 바꾼 적이 있었다. 직모로 뻣뻣하던 머리를 살짝 파마를 하고 나타난 것이다. 절대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주변의 충격이 꽤 컸다. 그러나 친구는 쇄도하는 부정적 반응조차도 즐기며 행복해 했다. 파마기가 풀리자 다시 예전 스타일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나는 친구의 그런 시도가 조금은 부러웠다.

잘 바꾸지도 못하겠지만 난 내 스타일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하지만 가끔은 고착된 스타일에서 탈피해 보는 것만큼 흥분되는 일도 없을 것같다는 생각은 한다. 밋밋한 일상에 찍는 기분 좋은 방점으로 그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어서.

그러고 보니 요즘 대세는 정말 스타일 파괴인 것 같다. 세계를 들썩이게 하고 있는 '강남 스타일' 역시 가수 싸이의 스타일 파괴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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