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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따라잡기] 구글의 배신

[LA중앙일보] 발행 2012/09/14 경제 17면 기사입력 2012/09/13 16:58

스마트폰 시장 진출로 친구에서 적으로

양쪽은 아이폰 출시 이전(왼쪽)과 후의 안드로이드폰

양쪽은 아이폰 출시 이전(왼쪽)과 후의 안드로이드폰

2007년 아이폰 출시 후 1년 반이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2009년이 되면서 공짜 모바일 운영체제인 구글 안드로이드 스마트 폰 출시에 열을 올렸다. 제조사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연말이 되자 미국 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점유율은 50%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이적인 추격전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로 분석된다. 애플에서 iOS의 라이선스화를 거부하고 애플 기기만을 위해 묶어둔 것이 하나이고 두 번째는 아이폰이 이동통신사 AT&T의 독점 공급이었다.

간 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단계에 들어간 스티브 잡스는 구글을 상대로 극에 달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의 자서전을 보면 죽기 전 그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간다 해도 애플이 보유한 400억 달러의 현금을 퍼부어 구글과의 핵전쟁을 벌이겠다"면서 "안드로이드는 도둑질로 만들어진 제품"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한때는 최고의 친구 관계였다. 구글의 "Don't Be Evil" 모토가 등장했을 때 애플은 반마이크로소프트 최전선의 우방으로 구글을 받아들였다. 구글의 대표 에릭 슈미츠는 애플의 이사회 멤버이기도 했다. 헌데 두 회사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자웅을 겨루면서 그 관계는 하루아침에 휴지통 속으로 처박혔다.

애플은 전세계 각지에서 안드로이 제조사를 상대로 50여 개의 소송을 벌이고 있다. 최근 캘리포니아 산호세 연방법원에서 애플은 특허침해를 인정한 배심원의 평결로 삼성으로부터 10억 달러의 배상금을 받게 됐다. 하지만 애플의 칼끝이 삼성이 아니라 구글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처럼 "모 아니면 도" 방식의 싸움을 벌이는 애플의 동기는 과연 무엇일까. 시장 점유율이나 스마트폰 경쟁에서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는 배반감에서 출발한 감정선의 폭발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의 궁극적인 목적은 배상금이 아니라 안드로이드의 사멸이다.

2001년 구글은 실리콘밸리의 인터넷 신생사였다. 창업 3년 만에 자본금 5000만 달러를 확보한 인터넷 검색 회사로 이름을 알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두 창업자는 테크놀러지 업계의 '다스 베다'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언제 칼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전전긍긍 모드였다.

스탠퍼드 출신의 두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빈은 당시 스티브 잡스를 찾아가 구글의 대표가 돼줄 것을 간곡히 설득했다. 이미 픽사와 애플의 대표였던 잡스가 이들의 요구를 받아주진 못했지만 두 젊은이를 기특히 여겨 자신의 수제자처럼 받아들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절친이자 애플 이사회 멤버였던 빌 캠블까지 소개해주며 도와주라고 당부했다. 캠블 역시 실리컨 벨리의 내로라하는 회사를 운영했던 경영자였고 콜롬비아대학 미식축구팀 감독을 역임했던 이색경력의 소유자로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는데 캠블의 조언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는 게 잡스의 생각이었다.

당시 야후와 여타 포털 사이트의 인터넷 검색기능이 존재했지만 구글은 전혀 새로운 방법을 통해 인터넷 광고 혁명을 가져왔다. 잡스는 두 회사가 결코 충돌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 구글과 애플의 윈윈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동시에 공동의 적인 마이크로소프트를 대적하자는 포석을 깔아뒀다.

이런 전략은 매우 성공적인 것이었고 이후 잡스는 페이지와 빈에게 에릭 슈미츠를 CEO로 영입할 것을 적극 추천했다. 두 회사의 관계는 가족처럼 연인처럼 우애와 사랑을 나눴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사업성공을 이룬 두 회사였지만 미래를 보는 그들의 시각은 똑같았다. 아이팟의 성공으로 소비자 가전에 발을 담근 애플은 필연적으로 휴대폰과 MP3 그리고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하나로 융합돼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태블릿 운영체제를 연구 해오던 애플은 2004년부터 아이폰 개발을 시작했다.

한편 데스크톱 영역의 인터넷 사업이 포화될 것을 염려한 구글은 다음 시장으로 모바일 인터넷을 꼽았다. 인터넷 사용자들의 검색활동에 사운을 걸고 있던 구글에게 모바일은 신천지였다. 구글은 2005년 애플출신의 엔지니어 앤디 루빈이 만든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회사를 300만 달러의 헐값에 인수해버렸다. 값도 쌌고 혹시나 하는 생각의 인수였다.

2006년 8월의 어느 날 밤 잡스는 에릭 슈미츠를 집으로 초대했다. 여느 때 처럼 사업 이야기를 나누다가 잡스는 슬그머니 애플의 아이폰 개발을 알려줬다.

이유는 아이폰의 성공에 구글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구글 맵 유투브 등 콘텐츠 서비스를 아이폰의 간판 기능으로 내세워야했다. 철저한 비밀주의로 유명한 잡스가 아이폰 개발을 슈미츠와 의논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로 구글을 신뢰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이폰 존재를 알게된 슈미츠는 그날로 페이지와 빈을 불러들였다. 그가 내뱉은 첫 마디는 "큰일났다"였고 "오늘부터 당장 우리도 개발을 시작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글의 첫 안드로이드폰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터치 기반이 아니라 블랙베리처럼 쿼티 키보드 타입의 스마트폰이었고 이 때만 해도 잡스는 성질을 죽이고 있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폰이 아이폰과 같은 멀티티치 기반으로 진화하자 잡스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경쟁사의 수장 에릭 슈미츠도 애플 이사직의 사임을 미루고 미루다 2009년 봄에서야 스스로 사임했다.

슈미츠가 애플 이사로 재직하면서 애플의 비즈니스 플랜과 비밀전략을 빼돌린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드러났고 구글은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디지털 음원 및 전자출판물 클라우드서비스 등 애플의 코어 사업에서 사사건건 충돌하기 시작했다.

잡스는 2010년 초 아이패드 키노트 직후 직원들을 앞에서 공식적인 대구글 선전포고를 선언했다. "구글의 Don't Be Evil 모토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명심해라! 우리가 그들의 검색사업에 진출한 게 아니라 그들이 우리의 스마트폰 사업에 진출했고 우릴 죽이겠다고 덤비고 있다."

잡스 사후 애플의 DNA는 수없이 논의됐다. 잡스가 이룩한 발자취와 그가 새겨넣은 성공한 경영방식의 또 다른 표현이다. 애플에선 최고의 경영진부터 리테일 스토어의 일반 직원들까지 이 DNA를 가장 큰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다.

구글을 상대로 한 원한 또한 잡스가 남긴 DNA이기에 애플과 구글의 싸움은 어느 하나가 죽을 때까지 누구도 말릴 수 없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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