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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부산이 대세다'

[LA중앙일보] 발행 2012/10/04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2/10/03 18:11

이종호 논설위원

고향은 우리들 영혼의 일부

언어.풍습 좀 다른들 어떠랴

주눅들지 말고 당당히 살자

고향은 나의 일부다. 내 몸과 영혼이 자라난 요람이고 세월이 흘러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 의식의 밑바닥이다. 고향이라는 말만 읊조려도 애틋한 그리움이 피어오르는 까닭이다.

나의 고향은 부산이다.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그 곳을 떴다. 벌써 30년도 더 전이다. 하지만 고향의 자취는 진한 사투리로 여전히 내 입에 붙어있다. 아직도 부산 이야기만 나오면 귀가 쫑긋한다. 이런 것이 고향이다.

요즘 부쩍 우리 고향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우선 대선 후보들 때문이다. 안철수가 부산 사람이다. 문재인도 부산이 기반이다. 부산 민심에 이러쿵저러쿵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담론은 솔직히 달갑지가 않다. 좋은 대통령과 출신 지역은 아무리 생각해도 별 상관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대신 영화나 드라마에서 만나는 고향은 언제나 반갑다. 놀랍게도 요즘 한국에서 제작되는 영상물은 거의 3분의 1이 부산에서 찍는다고 한다. 산과 바다 강이 함께 있어서란다. 60~70년대 모습을 갖고 있는 시장 동네 골목들이 여전히 있고 뉴욕 맨해튼을 연상시키는 해운대 마천루까지 두루 있어 부산만큼 촬영 여건 좋은 곳도 없기 때문이란다.

정작 부산 주민들은 경제 기반이 붕괴돼 살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푸념이다. 그래도 화면 속의 부산은 여전히 낭만과 열정이 흘러넘치는 매력의 도시다. 덕분에 어디서든 부산 사투리를 쉽게 만난다.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부산을 배경으로 한 2001년 영화 '친구'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칵 마~ 궁디를 주~ 차뿌까.' 오락프로 개그콘서트에서 김해 출신 개그맨이 퍼뜨려 올해 최대 유행어가 된 말이다. 김해는 부산 바로 옆이다. 최근 두어 달간 한국 젊은이들을 녹여놓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7'도 부산 사투리 범벅이었다. '우야지?' '야~가 와 이리 깰받노?' '니 윽수로 좋아한다 아이가' 같은.

부산을 소재로한 인터넷 유머도 빼놓을 수 없다. '부산말의 놀라운 압축능력' 같은 것이 그 예다. ▶고다~꾜 쏵샘(고등학교 수학 선생님) ▶할뱅교?(할아버지 오셨습니까?) ▶니 그카이 내 그카지 니 안 그카믄 내 그카나?(네가 그렇게 말을 하니까 내가 그러는 거지 네가 안 그러는데 내가 왜 그러겠니?) ▶가~가 가가가?(그 아이 성이 가가(哥)냐?)

이런 언어유희는 부산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정말 주목하고 싶은 것은 눈에 띄게 달라진 부산 사람들의 태도다. 더 이상 사투리 쓴다고 주눅들지 않는다. 지방 출신이라고 변방에 산다고 움츠러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더 당당하다. 자신감이 넘친다.

그러고 보니 부산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 제주도 어느 지방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사투리 향토 음식 고유 문화 그리고 지역 역사까지 고향의 모든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떳떳이 드러낸다. 다른 지방 사람들도 그런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긴다. 일부러 찾아가고 따라 하기까지 한다. 한국의 달라진 이런 모습들이 나는 좋다. 선진국이 별건가.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 이런 것이 진짜 선진국이다.

미국에 사는 나를 돌아본다.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주눅 들고 위축되어 살고 있다는 것 100%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한국의 지방 전성시대를 보면 이 또한 반성한다. 미국이라고 별 다른 덴가. 고향 티내는 일은 잘만 하면서 한국사람 티내는 것은 부끄러워한다면 안 될 말이다.

영어 좀 서툴면 어떻고 문화와 관습 좀 다르면 또 어떤가. 기죽지 말고 살 일이다. 당당하게 살 일이다. 요즘 한국 사람들 다들 제 고향 자랑스러워하며 당당하게 잘 살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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