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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탤런트 김혜자를 만났다

이종호/논설위원

탤런트 김혜자를 만났다. 지난 일요일 오렌지카운티의 한 교회 집회에서였다. TV에서 본 것보다 훨씬 단아하고 곱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그는 1941년생이다). 유명인답지 않은 수수함과 다감하면서도 또렷한 말투 역시 인상적이었다.

JTBC에서 방영된 '청담동 살아요'라는 드라마를 끝내고 머리도 식힐 겸 한 달 정도 미국 딸네 집에 와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한 시간 남짓 아프리카 어린이 구호활동에 관한 얘기를 들려줬다.

대개는 이미 들어 알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103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결연을 맺고 있다는 대목은 처음이었다. 103명이면 1달에 309만원 거의 3000달러씩이다. 아무리 인기 스타라 해도 매달 이만한 돈을 꼬박꼬박 보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가 말했다. "저도 이제 나이가 적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수입이 괜찮으리라는 보장이 없어요. 그래서 돈이 생기면 먼저 아이들에게 보낼 결연비부터 빼 놓습니다. 그렇게 2016년까지는 해 놓았어요."



아이들과의 약속은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다. 엄마의 마음이었다. 얘기는 계속됐다.

1992년 월드비전 친선홍보대사로 처음 에티오피아에 갔다고 했다. 이후 케냐 소말리아 르완다 수단 등을 수시로 방문했다. 갈 때마다 눈 뜨고는 못 볼 '지옥'을 보고 왔다. 원숭이 몇 마리만 죽어도 연일 신문 방송에서 떠들어대는데 하루에도 수백 명씩 죽어가는 그 아이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이상한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알려야 했다. 도와야 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벌써 20년이 됐다.

그 동안 책도 썼다. 아이들과 함께 한 눈물의 기록들을 모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2004년)라는 수필집이다. 책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거기서 나온 인세 역시 고스란히 아이들을 위해 쓰인다.

"좋은 일 참 많이 하시네요." 사람들은 늘 이렇게 칭찬한다.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에요. 누구든 그곳에 가 보았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겸손의 마음이다. 고개가 숙여졌다.

SBS에 방영된 영상도 잠시 봤다. 못 먹고 병들어 사위어 가는 아이들과 함께 한 눈물겨운 영상이었다. 몇 번이나 봤을 텐데 그는 또 눈물을 훔쳤다. "요즘 서울에선 강아지도 그렇게 죽진 않아요. 사람인데 그들도 사람인데…정말 이럴 순 없어요."

누구든지 머리로는 "도와야지" 한다. 하지만 가슴으로 실천하는 이는 몇 안 된다. 머리와 가슴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 멀다. 거기다 중간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어 머리에서 가슴까지 평생 사랑이 내려오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바리케이드를 걷어 내는데 조금이나마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전 유명 배우니까 제가 본 것을 얘기하면 좀 더 설득력이 있겠지요. 이런 일에 쓰임받는 것이 너무 감사해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냄새가 있다. 맑은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선 선한 향기 혼탁한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선 그 반대의 냄새가 난다. 김혜자에게선 그윽한 신앙인의 향기가 풍겼다. 따뜻한 엄마 냄새도 났다. '전원일기' '엄마가 뿔났다' 같은 드라마를 오래 해서가 아니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지구 반대편 아이들을 위해 흘리는 뜨거운 눈물 때문이었다.

김혜자는 '권사님'이었다. 그날 교회에서도 그렇게 불렀다. 탤런트 선생님 국민엄마 등 어떤 호칭보다 듣기가 좋았다.

동행했던 우리 아들이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들의 손을 덥석 잡으며 이름을 묻고 포즈를 취해 주었다. 기대 밖이었다. 순간 그가 흘려온 눈물이 연예인이어서 쉽게 흘릴 수 있는 눈물이 아니라 애통해하는 자의 진정한 눈물이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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