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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론] 워커힐과 정수장학회

이길주 버겐커뮤니티칼리지 교수

1961년 가을. 5ㆍ16 쿠데타의 지도부는 대담한 외도를 실행한다. 구악을 일소한다며 정치깡패를 처형하고 심지어 양주ㆍ양담배와도 '전쟁'을 벌이던 군사정부가 그 서슬 퍼런 이미지에 맞지 않게 관광 호텔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바로 워커힐 얘기다.

 동양 최대규모의 위락시설을 짓겠다는 군사정부는 나름대로 비전이 있었다. 이를 통해 매년 휴가를 보내기 위해 일본을 찾는 주한미군들을 한국에 붙잡아 둘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미군과 또 해외 관광객들을 통해 벌어들이는 외화를 경제개발을 위해 쓰겠다는 구상이었다. 첫 삽을 뜨고 11개월 후 소위 '한국의 라스베이거스'는 준공됐다. 놀라운 속도였다.

 한국 근대사에 워커힐과 같은 아이러니컬한 건축물은 없을 것이다. 이름부터가 그렇다. 한국전쟁 초기에 전사한 '불도그'란 별명으로 유명했던 전형적 야전사령관 월튼 워커 장군의 이름을 향락의 장소에 붙였다.

 근대화의 상징물 워커힐 건설엔 1만8000명의 육군형무소 복역수가 동원되기도 했다. 밀수가 망국의 대죄에 속하고 밀수품의 공개화형식이 벌어지던 시절, 워커힐은 외국산 자재들을 마음대로 들여왔다.



 그리고 나라가 하는 일에 보통사람들은 아무 말 할 수 없었던 구습(舊習)도 재연되었다. 워커힐 부지로 내정된 광나루 일대 임야 18만 평에 대해 토지 수용령이 발동됐다. 중앙정보부 주도 아래 주민들은 시가 2800만 환짜리 땅을 430만 환에 정부에 넘겨야 했다. 잘 알려진 대로 워커힐 건설과정에서 공금횡령 사실이 드러났고 워커힐은 결국 '4대 의혹사건'의 하나로 역사에 기록된다.

 1963년 4월 개장한 워커힐에 대한 외신들의 보도는 냉혹하리만큼 부정적이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군사정부가 외화벌이를 위해 매춘과 도박을 합치려 했지만 실패했다며 워커힐을 비난했다. 뉴욕타임스는 워커힐을 군사정권의 '계산착오'의 슬픈 상징이라고 했다.

 가장 혹독한 비난은 미국인들의 세금을 원조로 받아 살아가는 나라가 위락시설을 지어 미국 젊은이들의 주머니를 털려 한다는 손가락질이었다.

 국내언론들도 비판적이었다. 1968년 머뭇거리던 정부가 카지노를 전면 허용하자 동아일보는 일침을 가했다. "워커힐이라는 것이 뭔데 그 수지를 맞추어 주기 위해서 국민의 도덕의식의 마비도 불사하겠다는 것인가. 국민의 도덕의식을 마비시켜야 이루어지는 그런 근대화나 건설을 국민은 아무도 바라고 있지 않다." 이 신문은 "우리가 세계에서 첫째가는 후진국이라 해도 위정자가 첫째로 해야 할 일은 국민의 도덕의식을 수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쨌거나 워커힐이 한국사회의 선진화에 기여한 부분도 없지 않다. 대한민국 공보처의 표현대로 "워커힐 나이트클럽 무대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입체식 회전무대로…한층 쇼의 흥미를 돋우게 하는 것"이었다. 톱 디자이너들의 패션쇼도 자주 열렸다. 실내 수영장과 같은 현대시설은 스포츠 꿈나무들의 훈련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그리고 1966년 방한한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 부처를 비롯해 해외귀빈들의 숙소로 사용되어 국위선양에 일조했다. 환영만찬 중 정전으로 인해 초긴장의 상황이 발생했지만.

 워커힐은 끝내 부유ㆍ권력ㆍ특수층의 사치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특히 숲으로 가려진 빌라는 이들의 퇴폐적 향락의 장소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급기야는 '3ㆍ1 고가도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워커힐 왕래를 쉽게 하기 위해 건설되었다는 의혹마저 생겨났다. 매년 수백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이겠다던 꿈은 일찍 사라졌다.

 1973년 3월. 개관 10년 만에 정부는 워커힐을 민간에 매각한다. 관 주도로 무리하게 워커힐을 근대화ㆍ선진화ㆍ국제화의 상징으로 세우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순간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매각 결재서류 여백에 새 주인인 주식회사 선경이 워커힐을 "세계에서 제일가는 호텔로 발전시켜주시오"라고 적었다. 동기와 내용도 약하고 미래도 불투명한 일을 자르고 가는 그의 결단력을 읽게 한다.

 정수장학회 문제에 발목이 잡힌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되새겨 볼 가치가 있는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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