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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제2의 '화성돈'을 찾아서

김완신/논설실장

며칠 전 애리조나에 사는 작가 이충렬씨에게서 최근 발간한 그의 저서를 받았다.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김영사)라는 책이었다. 한국 문화예술 인물사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가 2년 전 출간한 '간송 전형필'에 이어 이번에도 잊지않고 책을 보내주었다.

최순우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했고 전형필은 한국 최고의 문화재 수장가다. 간송을 읽으면서 일제로부터 우리 문화재를 지켰던 전형필의 열정에 감명을 받았고 혜곡 전기에서는 한국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 최순우의 혜안을 보았다.

책이 주는 감동에 젖어있을 무렵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워싱턴DC 소재 '화성돈 공사관'이 102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화성돈(華盛頓)'은 '워싱턴'의 한자 표기다. 지금의 주미대사관에 해당하는 화성돈 공사관은 1891년 고종황제가 임금의 개인 재산 2만5000달러로 구입했다.

대한제국 주권의 상징이었던 이 건물은 1910년 한.일 강제합방으로 일본에 빼앗긴 후 개인에게 매각돼 주택으로 사용돼 왔다. 미국인 소유주와의 지난 18일 매입 체결로 한국 최초의 외교공관을 다시 찾게 됐다.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버려졌던 건물이 한 세기 만에 대한민국의 역사로 들어온 것이다.



화성돈 공사관 매입은 오래 전부터 워싱턴DC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제기돼 왔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예산부족과 절차상의 문제로 구입을 미뤘었다. 경제대국을 자처하는 한국이 매입금액 350만 달러가 없어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한제국 외교권의 본산을 방치해 왔다.

화성돈 공사관은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 문화재는 아니다. 그러나 주변국들의 침략야욕을 극복하고 국가의 주권을 세우려했던 고종의 의지가 담긴 국외 역사 유적임은 분명하다. 무관심이 한국사의 소중한 유적을 한갓 주거용 건물로 전락시켰고 늦게마나 이뤄진 매입도 역사인식 부재의 오명을 감추지는 못했다.

나라에 힘이 없던 시절 자국의 문화재나 유물이 밀반출 되거나 강탈당했던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를 되찾기가 한창이다. 중국은 19세기 말 제국주의 열강이 가져갔던 문화재 반환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05년에 문화재 보호계획을 수립한 후 약탈 국가에게 반환을 공식요청하는 한편 급성장한 경제력으로 크리스티 경매 등에서 6만5000여점의 문화재를 구매했다.

이집트도 유럽 국가들이 소유한 자국의 유물을 환수하기 위해 전담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09년에는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됐던 이집트 유물 5점을 가져와 문화재 반환을 불허하는 루브르와의 싸움에서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끊임없이 열강의 침략을 받았던 한국은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했다. 2005년 국감자료에 따르면 20여개국에 빼앗긴 문화재와 유물이 7만4434점에 이르지만 이를 찾기 위한 노력은 항상 소극적이었다. 또한 만주와 미주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는 한국 역사를 간직한 유적들이 많지만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역사는 과거지만 남겨진 문화재와 유물로 다시 현재가 된다. 한때 역사교육를 바로하자는 여론이 비등하기는 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고 유물 발굴과 반환 노력도 뜻있는 소수의 반향없는 외침으로 그쳤다.

제2 제3의 화성돈은 있다. 또 다른 화성돈은 지금 어느 곳에선가 해묵은 더께를 쓴 채 한국사의 양지에 자리매김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역사를 외면하고 문화.유물에 소홀했던 우리에게 울리는 경종으로 간송과 혜곡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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