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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같이 가자, 사랑하니까 그래"

[LA중앙일보] 발행 2012/11/06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2/11/05 22:08

김석하/특집팀 에디터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 '치매 환자' 가족에게는 처절한 비극으로 끝났다
그날 저녁은 같이 사는 자식 내외가 외출을 했다. 직접 아내의 저녁상을 챙기고 음식 먹는 것을 도왔다. 매일같이 하는 산책 탓인지 식사를 잘했다. 음식물을 흘리면 다시 입에 올려주었다. 50년을 같이 산 아내는 조용히 밥을 먹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의 초점을 잃었다. 주위에 잡히는 것을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베개와 TV 리모컨 옷걸이가 날아왔다. 아내가 치매에 걸린 후 2년 가까이 있어왔던 일이라 그러려니 참았다. 아내를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했는데 막무가내로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바람피운 거 다 알고 있다" "넌 부모 없이 막 자란 놈"이라며 막말을 해댔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곤 그만….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너희 어머니를 죽였다." 죄책감과 슬픔 불쌍하고 미안함 두려움이 밀려왔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아파트 창문으로 달려갔다.

지난달 한국에서 70대 이모(78)씨가 치매에 걸린 아내 조모(74)씨를 목 졸라 살해했다.(윗글은 사실을 기초로 각색한 것이다) 2년간 24시간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아내를 뒷바라지해 온 그다. 남편 이씨는 투신하려 했지만 급히 귀가한 아들이 가까스로 제지했다.

치매가 공포스러운 것은 내가 나를 전혀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혼이 빠져나간 솜뭉치 같은 뇌로 어떤 이상하고 창피한 짓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죽음 이상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65세 이후부터는 다섯 살 많아질수록 치매 환자가 2배씩 늘어 85세 이상은 2명 중 1명꼴(47%)로 치매가 발병한다.

부모를 끝까지 모시는 것이 전통이었던 우리로서는 아무리 선진국 미국에 살고 전문가들이 복지제도를 설명해줘도 '이상이 있는' 부모를 격리시키기가 죄송스럽다. 웬만하면 집에 계시는 것을 바란다. 그러나보니 무슨 일이 생기면 부모 중의 한 분이 다른 분의 수발을 전담해야 하는 상황이 늘고 있다.

삶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런 '노-노(老-老)가정'은 더욱 급증할 것으로 보이고 이에 따른 사회 문제는 갈수록 악화할 조짐이다. 특히 치매에 걸린 부모 한 분을 다른 분에게 맡기는 일은 끔찍한 일이다. 도맡은 분은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4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노인의 수발을 돕는 사람은 10명 가운데 절반이 배우자(53%)였다. 다음으로 큰며느리(12%) 딸(10%) 장남(8%) 둘째 이하 아들(6%) 순이었다.

그렇다고 서구식 복지제도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때론 잔인하다. 특히 노후제도가 그렇다. 경제적 활동이 정지되고 누군가(주로 자식)의 경제 활동에 걸림돌이 되면 가차없이 격리시킨다는 인상이 짙다. 격리된 장소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은 '관계의 끈'이 얇아지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특히 노년의 격리된 삶은 생물학적 죽음을 기다리는 무미건조한 대기시간에 가깝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할아버지는 아내의 목을 조르면서 "여보 같이 가자. 사랑하니까 그러는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눈물의 뜨거움이 우리 모두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할아버지가 감옥에서 보낼 처절한 시간의 고통이 너무 안쓰럽다. 생애 가장 아름다운 고백인 "당신을 사랑합니다"가 이렇게 비극적인 고백으로 마무리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이 아무리 큰 변혁을 이루고 발전해도 특별한 답이 없는 것도 있다. 우리 인생이 경건한 이유다. 사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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