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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아파도 너무 아픈 청춘들

[LA중앙일보] 발행 2012/11/15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2/11/14 17:53

이종호/논설위원

10여명 뽑는 좋은(?) 일자리 3000명 넘게 몰리는 현실 천편일률적 논술 답안 씁쓸
모 경제기관의 입사시험 논술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까지 하느라 며칠 한국을 다녀왔다. 해마다 10명 남짓의 신입직원을 뽑는데 올해는 3000명이 넘게 몰렸다고 한다. 이들 중 서류전형으로 400여명을 먼저 뽑았고 그들을 대상으로 논술과 영어 한자 등의 필기시험을 치렀다.

서류전형을 통과한 수험생들은 대부분 흠잡을 데 없는 '스펙'을 갖췄다. 좋은 대학 좋은 학점에 1~2년 해외연수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다. 그럼에도 최종 합격에 이르려면 필기에 이어 두 차례 더 면접을 거쳐야 한다. 바늘구멍이 따로 없다. 한국 청년실업의 일면이었다.

서류라도 내고 시험이라도 볼 수 있는 젊은이들은 그래도 낫다. 되지도 않을 입사지원서만 수십 수백 통을 쓰다가 좌절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한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대 청년들의 약 40%가 비경제활동인구라고 한다. 10명 중 4명이 아예 취업을 포기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이면엔 이렇게 풀죽은 젊은이들이 만연해 있다.

이런 사태를 대선 후보들이 지나칠 리가 없다. 박근혜 후보는 스펙을 초월한 채용시스템 구축과 청년 취업센터 설립 해외 취업기회 확대 등을 정책공약으로 내걸었다. 문재인 후보는 청년일자리 특위를 구성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청년고용 의무할당제 도입 등을 주장한다. 안철수 후보는 5년간 한시적으로 청년고용특별 조치를 실시하고 대기업 청년채용공시제 실시 신규 청년 채용 인센티브 강화 등의 대책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모두가 그럴싸하다. 하지만 의문이다. 역대 어느 정권인들 그만한 대책을 내놓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청년실업은 갈수록 꼬여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는가.

한국의 경제 발전은 여전히 눈부시다. 지난해엔 세계 9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돌파하며 세계 7대 교역국에 올랐을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 대기업 위주의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궂은 일 험한 일이라면 무조건 외면하는 왜곡된 고용시장 구조도 원인이다. 대기업이나 공무원 자리만 두드리고 지방 중소기업보다는 임시직일지언정 서비스업이 차라리 낫다고 여기는 의식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청년실업 해결은 요원할 것같다.

요즘 한국 대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취업준비를 한다. 취업 잘되는 학과가 입시 점수도 높다. 의대는 아무리 지방이라도 최고의 인재들이 몰리고 확실한 직업이 보장되는 교대 같은 곳이 거의 서울대 수준이 되었단다. 이렇듯 모든 20대에게 취업만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다 보니 청춘이니 낭만이니 하는 말은 한없이 사치스러운 단어가 되고 말았다. 아 불쌍한 대한의 젊은이들이여.

천편일률의 논술 답안지를 접한 것도 그런 생각을 더하게 했다. 대한민국 5000년 역사를 통틀어 세계인이 놀랄만한 자랑스러운 한국사 세 장면을 고르고 그 이유를 써 보라는 문제였다. 그런데 기술된 내용의 80%가 현대사였다. 그것도 싸이의 강남스타일 김연아-박태환 2002년 월드컵 88올림픽 새마을 운동 같은. 광해군 이순신 이준 열사 세종대왕을 기술한 답안도 꽤 있었다. 그런데 이는 요즘 유행한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이었을 것이라는 귀띔을 듣고는 쓴웃음이 나왔다.

그렇다고 그들의 얕은 인문적 소양만을 탓할 수는 없었다. 당장 취업이 발등의 불이라는데 그래서 대학을 마치고도 다시 학원 다니며 달달달 취업논술 과외까지 받는 젊은이들이라는데 언제 한가롭게 문.사.철(文史哲) 인문학 공부를 하고 앉았을 것인가.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꿈과 낭만을 돌려줄 길은 정말 없을까. 정책 당국자들이 마냥 묘책만 궁리하고 있기엔 아파하는 청춘들이 많아도 너~무 많은 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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