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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라스베이거스 쇼와 안철수 드라마

이종호/논설위원

지난 주말 라스베이거스 최고의 쇼라는 '오(O) 쇼'를 봤다. 꿈결 같은 90분이었다. 배우들은 완벽했고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1998년 첫 공연 이래 14년째 이어진 명성이 헛것이 아니었다.

아찔한 공중그네 곡예는 어떤 체조선수보다 고난도의 기술과 회전으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수십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다이빙은 올림픽 선수의 그것 이상으로 절묘했다. 수중발레의 아름다운 군무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 책자에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환상이란 바로 이런 것 예술이 사람의 영혼을 흔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것이다."

전율과 감탄을 뒤로 하고 공연장을 나왔다. 하지만 여운은 길지 않았다. 뜨거웠던 박수도 심장이 멎을 것같던 긴장도 이내 도시의 불빛과 카지노의 어지러운 소음 속에 묻히고 말았다. 아쉬웠다. 그 유명하다는 공연을 기껏 잘 보고도 끝내 가슴 한 곳이 헛헛했던 그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여름 올림픽 장면들이 떠올랐다. 사격 펜싱 수영 체조 등 우리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환호와 감격 속에 한 달을 보냈었다. 모두가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땀과 눈물과 열정을 토해내는 선수들의 몸짓 하나 하나마다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펄떡이는 싱싱함이 넘쳤다.



길들여진 것과 '날 것'의 차이 답은 바로 이것이었다. 비즈니스가 덧씌워진 예술에는 갈채는 있어도 감동은 어렵다. 최고의 프로들이 연출해 낸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오쇼'였지만 결국 그것은 한 편의 잘 짜여진 프로그램이었고 호텔 카지노의 부속물일 뿐이었다.

요즘 한국 대선판을 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 후보들을 둘러싼 정치 9단들의 언변과 책략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의 정치쇼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진정한 감동을 발견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점에서 안철수는 감동의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깨끗하고 신선했다. 각본 없는 드라마에 대한 기대도 갖게 했다. 하지만 최고 시청률을 자랑했던 '안철수 드라마'는 지난 주 갑자기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동안 한국 정치판을 달궜던 '안철수 현상'의 진원은 깨끗한 정치에 대한 갈증이었다. 그러나 안철수는 일순 그것을 잊었던 것 같다. 기존 정치권이 고도의 권력 카르텔이자 두꺼운 진입장벽으로 둘러싸인 독과점 그룹이라는 것도 그는 간과했던 것 같다. 절대 자신으로 귀결될 리 없는 단일화라는 미끼를 덥석 물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협상 테이블에 앉는 순간 '싱싱한' 안철수도 똑같이 '그렇고 그런' 부류가 되고 말았다. 기성 정치권이 노렸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다고 겨우 그 정도에 물러서다니. 그는 김대중의 인동초 정신을 먼저 배웠어야 했다. 겨우 그 정도에 상처받다니. 노무현의 열정 김영삼의 노회함도 터득했어야 했다. 출마 선언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머뭇머뭇 하면서 때를 다 흘려버릴 게 아니라 박정희 전두환의 결단력과 과단성을 먼저 학습했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을 소홀히 한 것이 안철수의 순진함이었고 한계였다.

정치인은 감동을 팔아 연명한다. 그러나 동기의 감동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실은 결과의 감동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감동의 정치인이라던 노무현이 끝내 좌절한 이유도 딴 데 있었던 게 아니다. 지금 안철수의 사퇴에 많은 이들이 허탈해 하는 것은 기성 정치인에게서 맛보기 어려웠던 동기의 감동조차 누려볼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혼탁한 한국 정치판에서 티끌만한 감동조차 기대한다는 것이 정녕 불가능한 꿈일까. 국민들은 그 비싼 관람료를 내며 '대선 쇼'를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오쇼' 정도의 박수는 보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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