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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 넓은 땅 정복은 '의지'에 달려"…'불굴의 산악인' 박정헌씨

2005년 히말라야서 손·발가락 10개 잃고
3년 공백 깨고 자전거·페러글라이딩 도전
LA.애틀랜타·뉴욕 한인들 만나 대화시간
"강연통해 히말라야 아름다움 알리고파"


서슴없이 내민 그의 손을 무심코 잡았다. 물컹한 느낌에 이어 그의 선하고도 강렬한 눈매를 따라 따뜻함이 전해진다.

산악인 박정헌(41)은 2005년 히말라야의 촐라체 북벽 동계 첫 등정의 대가로 손가락 8개와 엄지 발가락 2개를 산에다 바치고서야 살아 돌아왔다.

그가 구해낸 후배 최강식도 손.발가락 19개를 잃었다. 그 '촐라체 기적'의 주인공이자 끊임없는 도전으로 인해 불굴의 산악인으로 자리매김한 산악인 박정헌(42)을 만났다. 그는 재미대한산악연맹(회장 이정호)이 창립 25주년 행사의 하나로 마련한 산악인 초청강연회의 연사로 오늘 저녁 LA 한국문화원에서 LA의 산악인들을 만난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다.

촐라체 사고는 본인의 산악인생에 있어 최대의 전환점이었을 텐데.

-한마디로 줄이면 '수직의 세계'에서 '수평의 세계'로 바뀐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촐라체가 산에서 저를 내려서 수평의 세상으로 보냈다. 정상 등정을 추구했던 산악활동에서 산악자전거와 패러글라이딩이라는 새로운 도구로 새로운 산을 열어 준 것이다. 그렇게 절망과 희망은 동시에 내게 찾아 왔다.

수평의 세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사고 그 이듬해 자전거로 실크로드 6000km를 자전거로 횡단했다. 손가락 없이도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1년에는 무동력 패러 글라이더를 이용해서 히말라야의 서쪽 끝인 K2에서 네팔 동쪽 끝까지 직선거리 2400Km를 횡단했다.

사고 이후 최강식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그 이후 3년간 우리는 공백기를 가졌다. 우리 둘에게는 지울 수 없는 원죄가 있다.

나는 최강식을 산으로 이끌었고 최강식은 크레바스에 빠져서 형의 손가락을 앗아간 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터칭 더 보이드'(Touching the Void)에서는 같은 상황에서 로프를 자른다. 하지만 둘 다 살아서 조우하게 된다. 그래서 실제로 그 둘은 3년간 철천지 원수로 지냈다.

현재의 본인에게 소중한 일은.

-강연을 통해 히말라야를 아름다움을 알리는 일이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히말라야 아트 갤러리를 지난 9월 경남 진주에다 열었다. 네팔의 전통 네와르 건축양식으로 지은 히말라야 복합 문화공간이다. 히말라야의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빛을 전달하고 싶어서 만들었다.

이번 방문 일정은.

-LA에 이어 애틀란타와 뉴욕에서 한인 산악인들을 만난다. 그동안 익스트림 클라이머로 히말라야에 천착해 온 패러 글라이더로 살아오느라 미국에 올 틈이 없었다. 요세미티의 거벽들을 동경해 왔지만 지금의 나에겐 더 이상 의미는 없다.

글·사진=백종춘 기자

☞박정헌은

산악계에서는 엄홍길 대장이나 고故 박영석 대장만큼이나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1994년 안나푸르나 남벽에 이어 1995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한국인 최초로 올랐고, 2000년에는 남남동릉을 무산소로 등정했으며, 불과 2년 뒤에 시샤팡마 남서벽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했다. 그리고 2005년 촐라체 북벽을 세계 최초로 겨울에 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운명을 뒤바꾼 최후의 등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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