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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너무 지나쳐서 무례해진 도시

[LA중앙일보] 발행 2012/12/13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2/12/12 17:54

이종호/논설위원

모든 것이 넘치는 과잉시대 주장도 지나치면 소음일 뿐 이젠 조금이라도 줄였으면
"유행이면 똥도 집어먹을 겨?" 허벅지가 다 드러난 초미니 스커트를 입고 나타난 며느리에게 시할아버지가 호통을 친다. "시부모 집에 오면서 치만지 빤쓴지도 모르는 옷을 입어?"라며. 요즘 한창 인기인 한국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에 나오는 장면이다. 작가는 시청률 제조기라는 별명의 김수현. 그는 쓰는 드라마마다 이렇게 과잉의 한국 사회를 향해 일침을 날린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었다. 요즘은 정력에 좋다면 바퀴벌레도 잡아먹는다는 패러디도 있다. 무엇인가에 한 번 씌었다 하면 물 불 가리지 않는 한국인의 과잉심리에 대한 비아냥들이다. 그렇게보면 유행이라면 똥도 집어먹는다는 말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옷차림도 얼굴성형도 명품도 취미도 그리고 읽는 책까지도 유행이라면 천지분간 못하고 무조건 따라하고 보는 한국이 됐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회가 섬뜩하다. 남이 하면 반드시 나도 같이 해야 하는 그 일사불란함 속에 어떤 광기나 폭력성 같은 것이 느껴져서다.

지난 달 한국방문 때의 이야기다. 지하철을 탔다.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번 역은 시청 시청앞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이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 뭔가가 한참 더 길었다. 한국말에 이어 영어 안내가 나왔다. 중국어도 일본어도 잇따라 나왔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OOO성형외과로 가실 손님은 O번 출구로 나가시면 됩니다.' 이건 또 뭘까.

광고다. 병원 학원 음식점 등 정차하는 역마다 안내 방송 뒤에 이런 광고가 이어진다. 안 그래도 서울은 광고 홍수다. 눈만 들면 성형외과 휴대폰 학원 식당 광고 따위를 봐야 한다. 그래도 눈을 감거나 땅을 보고 걸으면 그것은 안 볼 수가 있다. 지하철 방송은 싫으나 좋으나 들어야 한다. 그것도 공공시설이라는 대중교통 속에서.

택시를 탔다. 어떤 여자가 쉬지 않고 말을 한다. 내비게이션이다. 전방 30미터 과속 방지턱이 있으니 조심하세요. 띵동띵동 시속 60킬로미터 구간입니다 속도를 낮추세요. 우회전 좌회전 또 우회전하세요. 심심치는 않겠다. 그런데 정신이 없다. 택시만이 아니다. 모든 자동차가 다 이랬다. 조용한 차 안에서 음악 듣고 사색하고 다 옛말이다.

거리를 걸었다. 서울역 남대문 부근 신호 대기 건널목. 신호가 바뀌자마자 여기저기서 경적이 울린다. 뚜뚜 빵빵. 띠띠. 뭣하고 있느냐 왜 빨리 가지 않느냐는 재촉이다. 한국사람 급한 성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어디선가 요란한 구호가 들린다. 어떤 빌딩 앞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고 있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확성기까지 동원한 투쟁의 소리다. 이해한다. 하지만 귀가 먹먹하다.

어디를 가든 서울은 이렇게 왁자지껄이다. 분명 정상은 아니다. 이런 말을 했더니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생기 있고 활기차고 이게 사람 사는 모습 아니냐면서. 어떤 이는 이런 것이 소통이라고까지 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니었다.

소통은 배려다. 내 의견이 소중하다면 남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내 주장을 하려면 남의 주장도 들어야 한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일방적 소리는 아무리 옳아도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어도 결국 소음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은 너무 지나쳐서 무례해진 도시다.

한국 대선도 일주일이 남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많은 말을 들었다. 그렇게 쏟아 부은 말들이 과연 얼마나 유권자들 마음에 가 닿았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줄었으면 좋겠다. 정치뿐이 아니다. 주의도 주장도 종교도 교육도 그리고 물 불 안 가리는 유행도. 결핍도 문제지만 과잉은 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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