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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대표'와 '대표돼야만 했던 국민'

[LA중앙일보] 발행 2012/12/18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2/12/17 20:55

김석하/특집팀 에티더

초박빙의 대선 끝나면 당선인은 '다른쪽 국민'의 감정에 즉각 반응해야
대한민국의 정치 선거는 도박과 흡사한 면이 있다. 매번 돈을 날리면서도(절망) '이번만은 다르겠지(희망)'하며 한 표를 행사하기(베팅) 때문이다. 또다시 5년만의 그날이 돌아왔다.

한국 내 유권자는 물론 전세계 재외동포의 대다수가 한껏 흥분돼 있다. 특히 이번 선거처럼 절반의 확률일 때는 스릴감이 남다르다. 당연히 이기면 짜릿하고 지면 상실감이 크다.

박근혜와 문재인 지지자들은 이번 대선 결과가 향후 대한민국의 번영 또는 몰락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며 극히 상반된 강변을 펼치지만 사실 지금 같은 초박빙의 형국에서 박근혜와 문재인은 등가(等價)에 가깝다. 유권자 개개인의 표는 같은 값이고 지지 숫자가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한 표 차이라도 승자와 패자를 냉혹하게 가르지만 솔직히 나라(국민) 전체로 보면 그 차이는 의미가 없다. 시쳇말로 둘 중 아무나 돼도 그만이다. 누가 되든 국민의 절반은 환호하고 절반은 탄식하기 때문이다.

뒤집어서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다. 당선자는 선거 직후부터 자신을 밀어준 '정치적 동지'의 수만큼 '정치적 적'과 맞닥뜨려야 한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대의(代議) 제도로 특히 정치인은 '대표되는 누군가'의 대표다.

그 중 대통령은 전체(대다수) 국민의 대표다. 그런데 절반의 지지 즉 반쪽의 대표가 된다면 과연 '1인 국가대표'로서 자격과 권위를 얻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 '대표돼야만 했던 누군가'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 다원화 사회에서 '대표(representation)'와 '대표되는 사람(the represented)'간의 괴리는 언제나 존재한다. 둘 사이는 내적 필연성이 있고 선거나 선출은 이 둘을 결합하는 과정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사장.반장 등을 싸잡아 욕하는 이유 중 하나다. 대표돼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되지 못하고 그래서 대표가 자신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무관심과 환멸 반발심만 팽배해진다.

실패한 대통령의 공통된 점은 자신을 지지해 준 즉 이미 대표되어진 사람들만 챙긴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만일 전체의 80%를 차지한다면 그나마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흐름처럼 절반 가량이 '대표돼야만 하는(했던)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된다.

이걸 막기 위해서는 대표된 자의 '리스판서빌리티(Responsibility)'가 중요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전적 정의의 '책임'과는 좀 다른 의미다. 단어의 구조를 보면 어간 'Response-반응'과 어미 'Ability-능력'으로 돼 있다. 결국 합하면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만일 선거 결과가 예상대로 나올 경우 '절반의 대통령'에게 제일 먼저 중요한 덕목은 바로 이 Responsibility다. '대표돼야만 했던' 다른 반쪽의 생각과 감정-구체적으로 고통 힘겨움 등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이 시대가 원하는 대통령이다.

대통령 당선인은 '대표되어진 국민'의 축하에 감사하는 것과 아울러 '대표돼야 했던 다른 국민'의 상실감에 진심 어린 위로를 해야 한다. 그리고 임기 내내 끌어안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그토록 고대했던 위대한 대통령의 출발점이다. 또 그래야만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도박'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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