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향계] '감사의 10대 뉴스'를 꼽아보자
이종호/논설위원
"아이는 괜찮나요?" 다급하게 물었다. "의사가 아니라서 나는 모르겠다. 어서 병원으로 가보라." 물기 없는 마른 대답만 돌아왔다.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30여분 아내는 거의 정신을 잃고 있었다. 다리가 떨려 나도 제대로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병원 응급실. 아이는 여기저기 무엇인가를 붙이고 꽂은 채 누워있었다. 다행히 머리는 멀쩡해 보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입에서 거의 동시에 나온 첫 마디였다.
팔 다리 어깨 턱 발가락 등 온몸이 긁히고 피가 맺혀 있었다. 나중에 보니 팔뼈가 찍혀 금이 가 있었고 무릎이 구부러지지 않아 걷지를 못했다. 결국 아이는 3주간 학교를 못 가고 겨울방학을 맞았다. 그래도 그만한 게 어디냐 싶었다. 맨 몸으로 자동차랑 부딪쳤는데.
# 2012년이 저물고 있다. 매년 그래왔듯이 지난 1년을 돌아보며 나와 내 가족의 올해 10대 뉴스를 정해보았다. 책을 낸 것 아들과 둘이서 여행을 한 것 한국 다녀 온 것 이런 저런 강의를 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가족 여행도 소중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도 기억이 났다. 모두가 감사한 일이었다.
"마지막에 아이 사고만 없었더라면 올핸 정말 완벽할 뻔 했어요." 아내가 말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내 고쳐 다시 말했다. "아니에요. 이제 보니 그것이 제일 큰 감사 제목이네요. 그 사고를 당하고도 이 정도로 그쳤으니." 정말 그랬다. 그날 아이는 운이 나빴던 게 아니라 억세게 운이 좋았던 것이다.
영국의 성서연구가 매튜 헨리(1662~1714)목사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가 어느 날 밤거리를 걷다가 강도를 만났다. 집에 돌아온 뒤 그는 다음과 같은 일기를 썼다. '나는 감사한다. 첫째 강도가 내 지갑을 빼앗아 가긴 했지만 내 생명을 빼앗아 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내 돈을 다 가져가긴 했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내가 강도가 아니라 강도를 당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감사의 이유를 찾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감사임을 일깨워주는 얘기다. 하지만 아무나 쉽게 그럴 수 있을까.
# 이번 사고 이후 경험한 일련의 과정은 어설프고 낙후된 미국의 시스템들을 고스란히 확인한 시간이었다. 응급실 병원 보험회사 학교 경찰 리포트 등 어느 것 하나 매끄럽게 작동되는 것이 없었다.
미국은 좋은 나라다. 내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무탈하게 살 수만 있다면 정말 그렇다. 하지만 무슨 일이라도 생기고 무슨 기관과 관계해야 되는 순간이 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 비효율 비능률 그로 인한 불편함과 속터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아름다운 장미꽃에 가시가 있다고 늘 불평한다. 그러나 나는 쓸데없는 가시나무에 장미가 핀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한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알퐁스 카가 남긴 명언이다. 똑같은 현상도 시선만 달리하면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 나를 향해 던지는 말이기도 했다. 문제투성이 나라 미국이라며 불평만 할 게 아니라 그런 미국 땅에도 내 일처럼 나서서 도와준 사람들 내 아이 일처럼 걱정해주고 기도해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는 일깨움이었다.
한 해가 저문다. 돌아보면 누군들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이 없었을까. 그래도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긍정적인 쪽으로 바라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감옥이라도 감사로 지내면 수도원이 된다고 했다. 우리 모두 '감사의 10대 뉴스'를 꼽아보며 이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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