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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감사의 10대 뉴스'를 꼽아보자

이종호/논설위원

#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2012년 12월 4일 저녁 무렵이었다. 사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통화가 되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비보호 좌회전 차량에 치였다고 했다.

"아이는 괜찮나요?" 다급하게 물었다. "의사가 아니라서 나는 모르겠다. 어서 병원으로 가보라." 물기 없는 마른 대답만 돌아왔다.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30여분 아내는 거의 정신을 잃고 있었다. 다리가 떨려 나도 제대로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병원 응급실. 아이는 여기저기 무엇인가를 붙이고 꽂은 채 누워있었다. 다행히 머리는 멀쩡해 보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입에서 거의 동시에 나온 첫 마디였다.

팔 다리 어깨 턱 발가락 등 온몸이 긁히고 피가 맺혀 있었다. 나중에 보니 팔뼈가 찍혀 금이 가 있었고 무릎이 구부러지지 않아 걷지를 못했다. 결국 아이는 3주간 학교를 못 가고 겨울방학을 맞았다. 그래도 그만한 게 어디냐 싶었다. 맨 몸으로 자동차랑 부딪쳤는데.



# 2012년이 저물고 있다. 매년 그래왔듯이 지난 1년을 돌아보며 나와 내 가족의 올해 10대 뉴스를 정해보았다. 책을 낸 것 아들과 둘이서 여행을 한 것 한국 다녀 온 것 이런 저런 강의를 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가족 여행도 소중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도 기억이 났다. 모두가 감사한 일이었다.

"마지막에 아이 사고만 없었더라면 올핸 정말 완벽할 뻔 했어요." 아내가 말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내 고쳐 다시 말했다. "아니에요. 이제 보니 그것이 제일 큰 감사 제목이네요. 그 사고를 당하고도 이 정도로 그쳤으니." 정말 그랬다. 그날 아이는 운이 나빴던 게 아니라 억세게 운이 좋았던 것이다.

영국의 성서연구가 매튜 헨리(1662~1714)목사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가 어느 날 밤거리를 걷다가 강도를 만났다. 집에 돌아온 뒤 그는 다음과 같은 일기를 썼다. '나는 감사한다. 첫째 강도가 내 지갑을 빼앗아 가긴 했지만 내 생명을 빼앗아 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내 돈을 다 가져가긴 했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내가 강도가 아니라 강도를 당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감사의 이유를 찾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감사임을 일깨워주는 얘기다. 하지만 아무나 쉽게 그럴 수 있을까.

# 이번 사고 이후 경험한 일련의 과정은 어설프고 낙후된 미국의 시스템들을 고스란히 확인한 시간이었다. 응급실 병원 보험회사 학교 경찰 리포트 등 어느 것 하나 매끄럽게 작동되는 것이 없었다.

미국은 좋은 나라다. 내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무탈하게 살 수만 있다면 정말 그렇다. 하지만 무슨 일이라도 생기고 무슨 기관과 관계해야 되는 순간이 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 비효율 비능률 그로 인한 불편함과 속터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아름다운 장미꽃에 가시가 있다고 늘 불평한다. 그러나 나는 쓸데없는 가시나무에 장미가 핀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한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알퐁스 카가 남긴 명언이다. 똑같은 현상도 시선만 달리하면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 나를 향해 던지는 말이기도 했다. 문제투성이 나라 미국이라며 불평만 할 게 아니라 그런 미국 땅에도 내 일처럼 나서서 도와준 사람들 내 아이 일처럼 걱정해주고 기도해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는 일깨움이었다.

한 해가 저문다. 돌아보면 누군들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이 없었을까. 그래도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긍정적인 쪽으로 바라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감옥이라도 감사로 지내면 수도원이 된다고 했다. 우리 모두 '감사의 10대 뉴스'를 꼽아보며 이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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