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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블랙 컨수머와 화이트 컨수머

김완신/논설실장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 '블랙컨수머(Black Consumer)'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블랙컨수머의 영어식 뜻은 '흑인 소비자'를 말하지만 한국에서는 악덕 소비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통용된다. 블랙컨수머는 기업이나 업소를 상대로 보상금 등을 목적으로 구매한 상품에 대한 악의적인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를 뜻한다. 한국에서는 블랙컨수머를 직업으로 삼아 수억대의 금품을 갈취한 사기범까지 등장했다.

블랙컨수머가 크게 늘어난 이유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기인한다. 예전에는 개인이 악성 소문을 퍼뜨리는데 한계가 있었지만 지금은 진위가 검증되지 않는 내용을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는 것이 용이해졌다.

문제는 기업의 입장에서 블랙컨수머에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기업 이미지의 훼손 방지를 위해 블랙컨수머의 억지 주장을 수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블랙컨수머의 범위는 넓다. 기업이미지를 볼모로 보상을 강요하는 것외에 종업원에게 폭언 등으로 감정적인 상처를 주는 것도 블랙컨수머에 포함될 수 있다.



서비스업이나 소매업 종사자들은 정신적.육체적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감정노동자'들이다. '감정 노동(Emotional Labor)'이란 개념을 처음 소개한 사회학자는 앨리 러셀 혹실드다. 그는 '감정 노동(The Managed Heart)'이라는 저서에서 스튜어디스 마트 종업원 판매사원 등의 직업을 예로 들면서 고객에게 모욕을 당해도 웃음을 잃지 않고 감정을 절제해야만 하는 '감정의 상품화'를 설명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감정이 상품화되면서 '고객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거나 고무시켜야 하는' 감정 노동자들의 고충은 더욱 커진다. 인간의 사적 영역인 감정이 상품화되고 또한 관리되어지는 상황이 상거래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삽을 든 블루 칼라와 펜을 든 화이트 칼라로 노동의 영역이 양분됐지만 자본주의의 무한경쟁과 서비스업의 발달로 감정이 노동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급료를 위해 상품과 함께 감정을 팔아야 한다.

주변을 살펴보면 업소나 식당 등에서 종업원들을 함부로 대하는 손님들이 많다. 폭언과 욕설 뿐아니라 도를 넘어서는 농담도 빈번하다. 종업원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강요하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종업원들은 육체와 정신뿐 아니라 사적인 감정까지도 직업을 위해 착취당하는 것을 감수해야만 한다.

연방 통계청이 2010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우울증 발병 빈도가 정신적 또는 육체적 업무를 주로하는 직장인들에 비해 1.4배 높게 나타났다. 고객을 대할 때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매출증대를 위해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종의 직업병이다.

소비자 중심의 시장경제에서 기업이나 업소가 살아 남으려면 고객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종업원들의 감정은 피폐해지고 물화(物化)돼 간다. 손님은 왕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돈으로 동일한 상품을 구입하고도 어떤 고객은 왕 대접을 받지만 다른 고객은 치한 취급을 당한다. 돈이라는 재화는 동일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냐에 따라 왕도 되고 블랙컨수머도 된다. 새해에는 어색한 용어이기는 하지만 미덕의 소비자를 뜻하는 '화이트 컨수머(White Consumer)'라는 말도 생겨나기 바란다.

돈으로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지 종업원들의 감정까지 사는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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