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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한 배를 탄 소년과 호랑이

[LA중앙일보] 발행 2013/01/23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3/01/22 18:25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보다 혼자 남는 절망감이 더 커 상생과 공존의 해법 찾아야
최근 앙 리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를 봤다. 올해 아카데미상 11개 부문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기 전 예고기사를 읽으면서 궁금한 점이 있었다. 영화 줄거리가 조난을 당해 작은 보트에 함께 타고 227일간 바다를 표류하는 소년(파이)과 벵갈 호랑이 이야기라고 하는데 그것이 가능할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한계상황이지만 스토리를 엮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자 또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비상구 없는 망망대해에 한 배를 탄 소년과 호랑이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작가는 극한의 상황을 설정해 놓고 어떻게 긴 이야기를 채워갈까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호랑이가 소년을 죽이거나 아니면 반대일 것이라는 단순한 예상때문에 생긴 호기심이었다. 물론 둘 중 하나가 바다에 빠질 수도 있다. 어린이를 위한 모험동화라면 둘이 우정을 나누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리라 추측하겠지만 얀 마텔 소설이 원작인 영화는 그렇게 '순진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마텔은 이 작품으로 2002년 영연방 국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부커(Booker) 상을 받았다.

처음 호랑이와 한 배를 탔을 때 소년은 작은 부표를 만들어 잠시 피하기도 했고, 호랑이가 보트 바닥으로 갈 때 올라가 비상용품을 몰래 가져가기도 했다.

호랑이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였지만 파이는 제거 대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호랑이가 물에 빠져 죽을 상황에서는 혼신의 힘을 다해 구해주었다. 그후 막대기와 생선먹이를 이용해 호랑이와 소통하는 규칙을 만들면서 공존할 수 없는 대상과의 상생이 시작된다. 파이는 좁은 배에 동승한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호랑이가 죽었을 때 혼자 남는 절망감이 더 무서웠다. 결국 그들은 육지에 도착해 호랑이는 밀림으로 가고 소년은 병원을 옮겨져 치료를 받게 된다.

영화를 한 소년의 몽환적인 표류기로 볼지, 처절한 생존의 사투로 읽을지는 관객의 자유지만 ‘라이프 오브 파이’는 종교, 사유, 삶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그럼에도 공존과 상생의 메시지가 더 강렬하게 느껴졌던 것은 보트에 동승한 소년과 호랑이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다.

공존과 상생이 올해 초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기 행정부를 출범하는 취임식에서 ‘우리는 하나’를 강조하면서 통합과 상생을 국정운영의 좌표로 제시했다. 공화와 민주의 대립, 백인과 유색인종의 갈등, 부자와 가난한 자의 괴리 등 ‘하나의 미국’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알력, 보수와 진보의 대립, 여전히 남아있는 지역 갈등, 빈부격차 등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선과 악의 대립은 도식적이다. 선은 승자가 되고 악은 패자가 돼야 사회가 바로 선다. 선과 악이 싸울 때 우리는 당연히 선의 편에 서야 한다는 훌륭한 도덕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 미국과 한국사회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들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단정할 수가 없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기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갈등이다.

국가와 사회를 막론하고 공동체의 운명은 풍랑의 바다에 던져진 작은 배와 같다. 한 배를 탄 상대들은 제거해야 할 호랑이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소년은 호랑이가 없었다면 바다와의 사투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소년과 호랑이가 엮어갈 이야기에 가졌던 호기심이 너무 '동화스러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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