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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아직 이 세상에 있어요"

모니카 류·암 방사선과 전문의

'아직 이 세상에 있어요. 텔마 올림.'

이 연말 카드는 매년 12월이 되면 소식을 보내오는 텔마에게서 받은 것이다. 텔마는 다른 어떤 이야기도 카드에 쓰지 않는다. 매년 똑같은 소식을 한 줄 써서 보낸다.

텔마는 유방암을 이긴 환자다. 이젠 환자가 아니고 '유방암을 이긴 여인'이랄까. 발병 당시 갱년기를 지나고 있었다. 분주한 LA에서 은퇴 주민들이 사는 한적한 곳으로 이사간다고 찾아 왔던 것이 십수년 전이다.

텔마는 유방암 진단을 받은 후 첫 번째 상담했던 종양학 전문의사와 충돌이 있어 나를 찾았던 여인이다.



"당신이 내 아내라도 나는 유방 완전 절제를 추천할 것입니다"라는 소견을 주었다고 했다.

내가 듣기에도 강력한 표현이었지만 진솔한 점도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텔마의 암은 유방 완전 절제가 아닌 일부 절제 즉 암 덩어리만을 도려내고 나머지 남은 조직을 방사선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쓰기에는 암 덩어리가 좀 큰 편이었다. 요즘은 약물치료로 암 덩어리를 우선 줄여주고 유방 일부만을 절제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는데 당시는 그런 방법이 없던 때였다.

텔마가 원하는 방법을 쓰면 유방의 모양이 일그러지고 다른 쪽과 차이가 눈에 띌만큼 작아질 판이었기 때문에 첫 번째 상담 전문의는 텔마의 요청에 찬성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생명에 큰 지장이 없는 한 치료때문에 생기는 모양의 변화를 염려해서 더 극단적인 수술을 추천할 필요는 없었다. 치료로 인해서 기능장애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인 경우에도 환자들은 왜 그래야 되는지를 이해하게 될 때 치료를 받아들이는데 하물며 모양이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 할 사람은 드물다.

때로 의사들도 너무 깊이 감정적으로 휘말리다보면 치료 결정 과정에서 혼동이 생기기도 한다.

어떻든 치료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환자나 보호자에게 있다. 의사는 최선을 다해서 가장 좋은 결과 즉 생명을 연장시키고 질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로 환자를 인도하고 또 환자와 함께 걷는다.

그렇지만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면 최종제안을 할 수도 있다. 이 점은 조심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의사들이 치료하려는 '몸'은 의사의 것이 아니고 환자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모에 텔마와 비슷한 시기에 치료를 받았던 올드타이머 아이린에게서 소식을 받았다. 아이린의 친구가 같은 병으로 나를 보러 찾아왔기 때문이다. 아이린의 완치가 그 친구에게 큰 힘이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현재의 환자든 과거의 환자든 진찰실 밖에서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나 선물을 받는 것을 피하는 것이 나의 생활방침인데 이번에 그 규칙을 깨고 함께 점심을 했다. 지난 달 아이린을 만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탁 건너편에 앉아 있는 아이린은 나이는 많아도 맑고 건강해 보였다. 텔마도 아이린 만큼 늙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달이 가기 전에 텔마에게 답신을 보내야 하겠다. 예전 처럼 '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계신 것 같아서 기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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