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기자의 눈] 새해 증후군 치유해준 탈북 청소년들

구혜영/사회팀 기자

1월이 다 끝나간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직 제대로 된 새해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기분 탓이다.

2013년의 시작은 생각했던 것만큼 산뜻하지 않았고 신문 속 매일 반복되는 '희망'이란 단어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뱀띠해 첫 한인 신생아의 꿈틀거림 올해는 꼭 시집가고 싶다는 주위 사람들의 들뜬 다짐은 무언가를 생각해내야 한다는 조바심만 키웠다. 이 기분을 설명할 형용사를 찾아보자면 모호하다 뿌옇다 두루뭉술하다 등이 적합할 것 같다.

새해 증후군은 물음표만 띄웠다. 12월31일과 1월1일 새해라는 말 때문에 하루 하루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진 않은가? 조건 없는 희망의 끝은 무엇인가? 너도 나도 계획이란 카테고리에 매인 몸이 돼야 하는가? 머리를 짜내고 짜내봐도 별 감흥이 없다. 정말 이대로 1년을 살아도 괜찮은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새벽 3~4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며칠간 이어졌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던 지난 24일 LA를 찾아온 탈북 고교생 8명을 만났다. 오멜버니 앤 마이어스 로펌이 서울 사무소 개소식 비용을 아껴 초청한 학생들이다. 이들은 고교생이라 해도 나이가 들쑥날쑥하고 탈북시기도 제각각이다. 한국에 정착한 지 짧게는 1년 길게는 7년 된 탈북 고교생들은 처음 밟는 미국땅에 감동한 듯 보였다. 숨기려고 애쓰지만 한 두마디 툭툭 튀어나오는 북한 말투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없고 왜 탈북했느냐고 꼬치꼬치 묻는 사람도 없는 곳. 합법적으로 당당하게 국경을 넘고 편견 없이 사람을 만나는 그 모든 경험이 이들에겐 새롭게 느껴졌나 보다.



만남은 충격적이었다. 흔히 탈북자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암울함은 그곳에 없었다. 너무 당연하게 행복을 논하고 기쁨을 표현하는 이들이 너무도 신기해 함께 있는 내내 가슴이 아플 정도였다. 겨울방학이니까 갈색으로 한번 염색해보고 싶었다는 A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삼겹살이라며 쌈 싸는 법을 설명해주던 B 미국 사람들은 왜 겨울에 반소매를 입는지 모르겠다며 감기 걱정까지 하던 C. 아직 북한에 가족을 남겨두고 국경을 넘은 4명은 카메라를 피하면서도 "우린 얼굴이 너무 잘나서 찍으면 안 돼요"라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수많은 '왜?'가 머리를 어지럽혔다. 부모와 생이별한 A가 웃고 있는데 '막막하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내 상황이 코미디처럼 느껴졌다. 새해 계획 운운하면서도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웃겼다. 처음 취재를 결정했을 때 이들은 그저 일상에 겹친 또 다른 부담에 지나지 않았다.

해야할 말 물어볼 수 없는 말 신변 보호 등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을 거듭했었다. 모든 것은 기우였다. 이들과 눈을 맞추고 재미없는 농담에 서로 웃어주며 보폭을 맞출 때마다 위로받았다. 제대로 된 치유였다.

아직도 새해 계획은 정하지 못했다. 새해 증후군을 극복했다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괜찮다. 이들의 얼굴에서 희망을 봤다. 조건없는 희망의 끝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안에 있는 동안엔 웃을 수 있다고.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해야겠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