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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0/20] 인사청문회의 '옥석 가리기'

[LA중앙일보] 발행 2013/01/30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3/01/29 23:41

김완신/논설실장

돌들이 사라지면 옥은 찾지 않아도 스스로 빛을 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부와 권력과 명성을 지닌 사회지도층은 국민에 대한 의무를 실천하는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기원전 700년 전에 쓰여진 호머의 일리아드에는 귀족들이 솔선수범해 전쟁에 나갈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나온다. 로마 시대에도 호민관이나 집정관 등 고위 공직자들과 귀족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기록이 있다. 실제로 로마의 집정관과 귀족들이 다수 전쟁에 참가해 전사하기도 했고 후기 로마시대 귀족 수가 줄어든 원인으로 전쟁을 지목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프랑스 작가 발자크의 작품에는 '젊은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당부를 가장 잘 함축한 오래된 경구'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등장한다. 발자크는 사회지도층이 자신들의 이익이나 명성을 얻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단지 옳은 일이기 때문에 하는 행동을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정의했다. 그만큼 서구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상류계층을 지탱하는 정신적 규범으로 자리잡아 왔다.

귀족 신분제도가 없는 미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부유층 재산의 사회환원에 초점이 맞춰지기는 했지만 근본 정신은 같다.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 철도재벌 윌리엄 헨리 밴더빌트 석유재벌 존 데이비슨 록펠러 등도 19세기 산업을 독과점하면서 막대한 부를 이뤘지만 후에 자선재단 학교설립 문화사업 등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록펠러는 '부자로 죽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공위 공직자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후보자가 지명되면 거의 어김없이 불법 재산증식 편법증여 자녀 군대기피 의혹 위장전입 등이 거론된다.

얼마전 이동흡 헌법재판소 소장 후보자가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공금의 불법적인 머니마켓펀드 투자 등 비리의혹이 드러나 사실상 낙마했다. 법을 수호하고 지켜야 할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법을 어긴 것이다.

최근에는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된 김용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자녀 편법증여 의혹 부동산 투자 두 아들의 병역비리 등이 문제였다. 결국 김 후보자는 29일 자진사퇴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 24일 연방상원 인준청문회에서는 존 케리 차기 국무장관 지명자가 출석해 자신의 외교적 견해를 밝혔다. 청문회는 케리 지명자의 외교업무 역량과 향후 외교정책을 검증하는 자리였다. 미국에서 지명자의 사생활에 대한 검증은 사전에 비공식적으로 이뤄져 청문회장에서는 주로 임무수행에 관련된 공적 사항만을 점검한다. 한국 국회청문회에서 후보자에 대한 인식공격성 비방이 오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용준 지명자까지 낙마하자 언론에서는 공위공직자 후보들을 선별하는 검증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검증을 철처히 해 부자격자를 사전에 골라내자는 것이다. 그러나 검증시스템의 강화보다 사회지도층에 만연돼 있는 비리와 불법을 먼저 척결해야 한다.

검증은 수많은 돌 속에서 옥(玉)을 찾아내는 일이다. 쉽지가 않다. 옥이 드물고 돌이 많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검증시스템 강화는 옥을 제대로 추려내자는 것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옥석 가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돌을 만들지 않는 정의로운 사회가 우선돼야 한다. 돌이 사라지면 굳이 찾지 않아도 옥은 스스로 빛을 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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