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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파괴하는 '술폭력'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필자가 일하는 병원건물 화장실에는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파란색 수첩들이 놓여있다. 표지에는 '아프십니까? 도와드릴게요'라는 글씨와 함께 가정폭력을 당할 경우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전화번호(LA지역:800-978-3600 전국:800-799-7233)가 적혀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안내가 나온다.

1. 위급 시에는 본인이 911을 부르거나 아니면 사전에 아이들에게 911로 전화하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2. 믿을 만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십시오 3. 작은 가방을 싸서 잘 감춰두거나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겨두십시오. 가방 속에는 현금 본인과 아이들의 일용품 약품 집과 자동차 열쇠 전화번호 주요서류 등을 넣어 두십시오 4. 미리 피신 장소와 가는 방법을 알아두십시오.

읽다 보면 마치 옛날 우리가 겪었던 6.25를 대비하는 듯 같지만 이것은 남편이나 보이프렌드에게서 폭행을 당하는 여성들을 위한 지침서다.

한인 여성들은 자주 폭행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버지에게 맞는 엄마를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분노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결국 아버지의 방식대로 사랑하는 아내를 때리기도 한다. 또한 군대식 훈육방법도 가정폭력을 조장하고 음주문화도 분노 조절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술을 잘 마시는 것을 남성다움의 상징처럼 생각하는 문화가 문제다. 술은 전두엽의 기능을 저하시키는 '중추신경 저하물질'이다. 일종의 마취제다. 전쟁 중에 총상당한 다리를 절단하기 위해 부상병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서 칼을 들이대는 영화 장면도 많다.

유교식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많은 한국의 남성들은 웬만한 감정은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니 서글프고 외롭고 그립고 미운 감정들이 생겨도 누르고 참는다. 그러다가 마취제인 술을 마시면 전두엽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감정의 제압기능이 떨어지면서 문제가 생긴다.

술로 오랜만에 감정의 자유로움을 맞보게 되면 억제기능은 사라지고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고 마음 속에 있던 말들도 여과없이 내뱉는다. 술이 들어가면 쭈뼛거리며 수줍어 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마구 춤도 추고 노래도 신나게 부른다.

그러다가 술로 인해 마취가 심해지면 포유동물에게 있는 번연계의 '싸움 또는 도망(fight or flight)' 반응이 나타나고 이 상태가 되면 동물과 다름없는 행동을 보인다.

갑자기 개가 짖어 대며 공격 자세를 취할 때에는 그 자리를 빨리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리고 경찰이나 이웃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술에 마취돼 인간 고유의 전두엽 기능인 감정조절 능력을 잃어버린 남편이나 보이프렌드는 위험한 개와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911을 부르거나 준비했던 가방을 들고서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 개가 난동을 부리면 동물 보호국에서 일단 잡아다가 안전한 곳에 가두어 놓고 병이 있는지를 조사한다. 분노 조절을 못하고 개처럼 행동하는 인간도 911 신고를 받고 온 경찰에게 자신이나 남에게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72시간 정신적 보호관찰을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3일간 정신 병원에 입원해 정신질환의 여부를 진단받고 치료를 받는다. 이것 만이 환자 본인과 아이들 그리고 희생을 숙명처럼 생각하는 아내들을 위하는 길이고 가정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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