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Los Angeles

70.0°

2020.09.25(Fri)

[기자의 눈] 로드맨의 엉뚱한 외교 훈수

  • 글꼴 확대하기
  • 글꼴 축소하기

[LA중앙일보] 발행 2013/03/07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3/03/06 18:07

원용석/사회팀 차장

데니스 로드맨은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과 함께 1996~98년에 미프로농구(NBA)팀 시카고 불스를 3연속 우승으로 이끈 주역들이다. 이들은 1995-96시즌에는 NBA 역대 최고승률(72승10패) 기록도 세웠다.

6피트6인치로 파워포워드 치고는 작은 키지만 로드맨은 타고난 위치 선정 능력과 점프력 철통 디펜스를 앞세워 NBA 골밑을 호령했다. 디트로이트 유니폼을 입었던 '배드보이스' 시절에는 조던이 이끌던 불스를 플레이오프에서 번번이 제압했다. 당시 조던을 누르고 우승 반지를 두개나 꼈다.

각양각색으로 머리 염색을 하고 온몸 문신에 피어싱을 몸 곳곳에 하고 다닌 그는 시쳇말로 '가장 튀는' 선수였다. 그의 자서전 'Bad as I Wanna Be(악동짓 하고 싶은 만큼 한다)'를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지금의 '악동' 이미지와 달리 그는 어린 시절에 말수가 거의 없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극도로 내성적(painfully shy)이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물론 집에서도 누이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또 독특한 외모 때문에 여학생들 사이에서 유독 놀림의 대상이 되곤 했는데 이는 그에게 "평생 흑인 여자와는 사귀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할 정도로 깊은 상처가 됐다. 그와 염문을 뿌린 스타(마돈나 카르멘 일렉트라)들이 주로 백인인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유아 시절에 아버지가 집을 나가버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불우한 가정환경도 그에게는 떨칠 수 없는 트라우마였다. 아버지 쪽으로 무려 45명의 이복 형제자매가 있다고 하니 그의 아버지를 향한 증오심이 이해가 간다. 그의 어머니는 3~4개 직장을 전전하며 가정을 꾸려나갔다.

누이들이 농구에서 두각을 나타낸 반면 로드맨은 고등학교 시절에 5피트6인치로 키가 작았고 레이업슛도 할 줄 모르는 농구 문외한이었다. 고교 졸업 후 공항 청소원으로 일할 때 키가 갑자기 크면서 농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쿡 카운티 칼리지와 사우스이스턴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을 거쳐 NBA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로드맨의 인생이 바뀐 것은 1993년 2월 어느 날이었다. 그는 우울증에 지쳐 자살을 결심하고 소총을 구입했다. 그런데 총을 든 순간 그에게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는 책에서 "삶을 포기하려는 순간에 해탈을 맛봤다"고 썼다. "지금까지 살아온 가짜 로드맨을 죽이고 앞으로 내 인생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맘대로 즐기면서 살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했다. 염색과 문신 그리고 경기 중 툭하면 상대팀 멤버나 심판과 싸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로드맨이 지난 26일 묘기 농구단 할렘 글로브 트로터스의 일원으로 북한을 찾았다.

열렬한 불스팬이었던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의 초청으로 만남이 이뤄졌다고 한다. 로드맨은 미국으로 돌아온 직후 ABC 방송 진행자 조지 스테포나폴러스와 인터뷰에서 "김정은도 오바마도 모두 농구를 좋아한다"라며 "양국 관계의 출발점도 농구로 하는 게 어떻냐"라는 의견을 보였다. 물론 '로드맨'과 '외교'는 전혀 안 어울린다. 그런데 양국간 공통점이 그 전에 아예 없던 것을 상기해 보면 로드맨 말에 일리가 있지 않나 싶다.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