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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유대인 엄마와 라틴계 입양 소녀

수잔 정/소아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로 환자를 치료하면서 가장 힘든 경우의 하나는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어린이.청소년의 부모를 보호기관에 신고할 때이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감정 및 행동 문제가 생겨 이를 치료해 주려고 찾아 온 부모를 법에 따라 보고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병원에 왔던 유대인 어머니와 그녀의 13세 멕시코 출신 양녀도 이런 경우다. 이 양어머니는 산모가 살고 있는 멕시코 마을을 찾아가 소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기다렸다. 출산 후에는 아기를 데리고 돌아와 정성을 다해 길렀다. 그러다 그녀는 소녀가 여덟 살 되던 해 남편(소녀의 양부)과 헤어졌다.

처음에는 자주 찾아와 소녀와 시간을 보내던 양부는 재혼 후 거의 연락을 끊었다. 11살이 되면서 소녀는 더욱 양부를 그리워했고 엄마에게 심하게 반항하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가출하고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날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엄마와 몸싸움까지 벌여 엄마가 급히 결찰을 부른 적이 세번이나 된다고 한다.

다른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유대인 엄마는 소녀의 반항이 단순한 사춘기 변화라고 믿었다. 그러나 소녀는 오래 전부터 자살을 생각했고 심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소녀의 정신과적 증상이 '양극성 질환(bipolar disorder)'의 모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 언제라도 본인이나 주위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분노와 우울증 심한 불안장애 불면 증상 온갖 잡념들… 그러니까 죽을 수밖에 없다는 자살에의 유혹 등이 위험요소였다.

상담과 함께 안정제 복용을 권하자 엄마는 "약물은 절대 안 된다"며 반대했다. 두뇌 화학물질 불균형에서 오는 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안정제를 권하면 대부분 부모들은 받아들이지만 정작 청소년 환자는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로 취급받는 것이 싫고 자신의 힘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통이 심했던 소녀는 약을 원했다. 반면 엄마는 정신과 약물에 대한 근거없는 나쁜 소문 때문에 거부했다. 미성년 환자의 약물치료는 부모의 허가가 필요해 어머니에게 약물에 대해 공부할 것을 권하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딸을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의 집에 잠시 기거하도록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는 가까운 사람이 없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모녀만이 남게 되면 학대의 가능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딸이 엄마와 몸싸움 할 때 엄마가 머리채를 잡았다고 했는데 사실인가요?"

"그랬습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죄송하지만 저는 아동보호법에 따라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보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화를 내며 엄마는 소녀를 데리고 나갔다. 다음 달 예약시간이 됐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부모는 다른 의사를 찾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엄마와 딸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찾아왔다.

"닥터 정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아동보호국의 소셜워커가 아이를 위해서 제가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을 알려주었고 저는 매주 바른 자녀양육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무조건 아이를 부모에게서 떼어 놓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답니다. 그리고 그분의 충고대로 딸이 약물치료도 받게 하겠습니다."

가끔은 법의 힘이 인간의 감정조절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나에게 일깨워 준 귀중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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