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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0/20 ] '손님' 북적이는 병원들

김완신/논설실장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매.구입하는 과정에는 갑(甲)과 을(乙)이 존재한다. 구입자는 여러 물건과 다양한 서비스 중에서 적합한 것을 선택할 권리가 있어 갑의 위치에 선다. 반면 판매자는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손님은 왕이라는 말도 있다.

갑을관계는 판매와 구입을 통해 이뤄지는 대부분 상거래에 적용되지만 예외인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의료서비스다. 의사는 치료를 제공하고 환자는 이를 구입하는 입장이지만 갑을의 관계는 역전된다. 소비자인 환자가 왕이 되는 구조가 아니다. 의료서비스를 상거래에 포함시키는 것에 이견의 여지는 있지만 진료에 금전적 대가를 치른다면 상거래의 원리가 적용돼야 한다.

많은 환자들이 을의 대접을 감수해야 하는 비근한 예가 병원에서의 대기시간이다. 몇주 전에 예약하고 제시간에 도착해도 제대로 진료받는 경우가 드물다. 모든 병원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환자의 예약시간에 맞춰 정확하게 진료한다고 자신하는 병원은 많지 않다.

예약없이 찾아오는 환자 때문이라고 병원측은 말하지만 그런 주장이 예약자의 '권리'가 침해받을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리고 요즘에 반나절 기다릴 각오로 예약없이 병원가는 무모한 환자는 거의 없다.



진료는 정해진 시간에 끝나는 기계적인 작업이 아니다. 예상치 않게 진료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환자들도 진료가 어느 정도 예약시간보다 늦어지는 것은 이해해야 한다. 문제는 한 시간 정도는 보통이고 두 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병원의 사정을 고려해 인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적정 환자수를 넘겨 예약을 받으면 시간에 쫓기기 마련이다.

예약은 쌍방이 만나는 시점을 정해 시간 낭비를 막자는 데 목적이 있다.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있어야 하지만 병원에서는 배려가 한 방향으로만 적용된다. 병원은 '분' 단위로 나눠 예약환자들을 무리하게 받고 환자는 '시간' 단위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다. 낮은 진료수가와 진찰료 때문에 환자수를 늘려야 한다는 이유도 있다. 이런 이유라면 의사의 시간은 '돈'이고 환자의 시간은 의사의 시간이 조금의 낭비도 없이 돈이 되도록 협조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수년 전 허리통증으로 치료를 받았던 의사로부터 편지가 왔었다. 정확히 말하면 의사가 아니라 그의 가족이 보낸 편지였다. 당시 가족은 의사가 사망했음을 알리며 자신들에게는 큰 슬픔이지만 환자치료에 지장이 염려돼 편지를 보낸다고 썼다. 고인을 대신할 전문의를 찾기 힘들었다며 주치의와 상의하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그의 병원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별도의 응접실에서 환자를 대기하게 했고 보험이나 서류 등 사무적인 절차를 거쳐야 할 때는 병원 직원이 직접 대기실로 왔다. 예약시간에 정확히 진료가 이뤄졌고 1시간 정도의 진료시간은 오로지 한 환자에게만 집중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후 어떤 병원에서도 이런 '환자대접'은 받지 못했다.

환자가 많아 예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병원은 안가면 되지만 의사 바꾸기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일단 의사를 정하면 진료기록과 보험 등의 문제로 다른 병원에 가기 힘들다. 1~2시간 정도 기다려도 다시 갈 수밖에 없다.

의료서비스는 진료이면서 동시에 상거래다. 의사도 환자도 진료가 상거래로 추락하는 것을 원치 않지만 북새통 병원에서 환자는 '손님'이 되고 의사는 '불친절한 업주'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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