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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100년 전 기독교 정신 어디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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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3/03/23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13/03/22 18:28

장열/특집팀 종교담당

1919년 가을 조선의 선교사들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조선 장로회 총회가 열린 날 이들은 일제치하 가운데 투옥된 3804명의 기독교인 이름이 담긴 보고서를 보며 통곡했습니다. 사살된 41명 매를 맞고 죽은 6명 아직 감옥에 있는 1642명의 기독교인 이름도 있었습니다. 당시 세브란스병원은 일본 순사나 헌병에 의해 폭행당하거나 가혹한 고문을 받고 실려오는 조선의 기독교인들로 넘쳐났습니다.

선교사들의 눈물은 일본 총독부를 향해 펜을 들게 했습니다. 조선의 선교사 및 선교회를 대표하는 '조선선교회연합공의회'는 일본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보낼 청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숨을 내건 행동이었습니다.

청원서는 16페이지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얼마나 잔인하게 탄압했는지에 대한 사실과 기독교의 자유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학교에서 성경 수업 및 예배를 포함시켜 줄 것을 요구하는 한편 일왕 사진에 절하고 배례 의식에 참가하라는 명령에 반대했습니다.

일본 순사나 헌병이 조선인들에게 행한 잔인성 야만성 불의에 대해서도 항의했습니다. 투옥된 기독교인들에게 고문을 하고 자백을 강요하며 변호인 선임을 허락하지 않은 것도 부당한 처사임을 적었습니다. 교회에 사복 형사를 심어 놓는 제도와 성경을 전달하는 '권서'를 미행하는 행위도 금지해 달라고 했습니다. 고문으로 장애가 된 기독교인들과 교회 건물을 파괴한 데 따른 보상도 요구했습니다.

일제 시절 조선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이 일본 총독부에 공식적으로 보낸 청원서 내용을 지난 3.1절을 맞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 소장돼 있던 청원서 원문을 UCLA 옥성득(한국기독교학) 교수가 최초로 공개한 것입니다.

이 청원서의 영향으로 일본은 1920년에 기독교 교육을 일부 허용하고 종교단체 법인화를 수용했습니다. 청원서를 보면 선교사들이 일제 탄압과 핍박 속에 조선과 기독교를 어떻게 목숨 걸고 지켜내려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기독교의 올곧은 신념과 목소리는 세상의 희망이었습니다.

과거 신앙의 선조들이 눈물로 지킨 한국 기독교가 요즘은 어떻습니까. 희망은커녕 기독교에 대한 세상의 불신은 깊어져 갑니다. 최근 목회자들의 표절 문제와 성추행 교회 세습 건축 논란 등 각종 문제들로 점점 외면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때론 교회란 틀에 갇혀서 외부의 시선은 외면한 채 세상과 분리된 듯한 기독교인의 모습을 볼 때 안타깝습니다. 교회 울타리 안에서는 얼마든지 훌륭하고 본받을 만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정작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은 어떻습니까. 기독교인은 세상과 구별되어야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습 속에 기독교의 진리는 세상에서 점차 영향력을 잃어갑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상황들을 자신있게 부정할 수 있습니까.

기독교는 눈물을 수반한 역사가 있습니다. 크리스천이라면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는 기독교를 위해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려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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