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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85세 최 박사의 삶과 꿈

[LA중앙일보] 발행 2013/04/02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3/04/01 17:37

이종호/편집팀장

거칠 것 없던 한국 생활 포기 자식들 위해 고난의 길 선택 이민 1세 헌신적 삶 존중해야
영혼이 늙으면 젊어도 늙음이요 영혼이 젊으면 늙어도 젊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 중에도 여전히 젊은 영혼을 가진 분들이 많다. 한국 최초의 심장수술을 주도한 85세 의사 최영수 박사도 그 중의 한 분이다.

1970년에 미국에 왔으니 벌써 43년째다. 켄터키주 재향군인병원 등에서 30여년을 일했다. 2001년 은퇴한 후 가주로 이사 와서 지금은 LA북쪽 발렌시아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는 만주 용정 출신이다. 시인 윤동주도 잠시 다녔던 광명중학을 졸업하고 해방 후 단신 월남해 어렵사리 서울의대에 들어간다.

졸업하려던 해 6.25가 터져 인민군에 붙잡혀 죽을 고비도 넘겼다. 이후 군의관으로 입대해 도합 15년을 복무했다. 육군수도병원에 근무하던 1961년엔 인공심폐기와 저온마취법을 이용한 폐동맥협착증 수술을 한국 최초로 성공시켰다. 이는 '의학계의 개가(凱歌)'라는 제목으로 당시 모든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그러나 최 박사는 쏟아진 명성과 영예를 뒤로 하고 미국행을 선택한다. 이유는 단 하나 두 번의 연수를 통해서 만났던 새로운 세상을 자식들에게도 안겨주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미국은 녹록치 않았다. 한국을 떠난 이상 더 이상 박사학위도 한국 최초의 심장수술 전문의라는 명예도 소용없었다. 미국의사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다시 시험을 보고 수련의 과정을 밟아야 했다.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해 주말도 야간도 반납하고 쉼 없이 뛰어야 했다. 그 와중에 건강을 잃어 두 번의 심장 수술과 두 번의 암 수술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났고 끝내 네 자녀를 하버드 의대 교수를 비롯해 유수 기업의 CEO로 음악가로 키워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시고기 얘기가 생각났다. 맑은 개울에만 산다는 이 물고기의 특징은 수컷에게 있다. 산란기가 되면 암컷은 알을 낳고 떠나 버리고 수컷이 대신 알을 지킨다. 새끼들이 알에서 부화된 뒤에도 다른 물고기와 물벌레들에 맞서 몇날 며칠을 먹지도 않고 새끼들을 지켜낸다. 그러다 지쳐 죽고 마는데 그것도 모르고 어린 가시고기들은 제 아버지의 몸을 뜯어 먹으며 자란다는 얘기다.

이게 비단 최 박사만의 얘기일까. 어쩌면 이민 1세 모든 부모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최 박사는 잘해야 1년에 한두 번 자식들을 본다고 한다. 다들 멀리 있고 저마다 바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섭섭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담담하다. "때가 되면 다 놓아야 해. 돈도 명예도 그리고 자식도. 그게 순리야."

최 박사는 또 말한다. "최연소 군의관 박사 최초의 심장수술 전문의… 대단했었지. 그때가 내 인생의 절정이었어. 하지만 내가 진정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그때가 아니야. 자식들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것 바로 그것이지."

그는 지금도 열심히 신문을 읽고 의학 잡지를 정독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환자도 본다. 육신의 나이는 어쩔 수 없지만 정신마저 녹슬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란다.

나이가 들면 너나없이 처량해지고 초라해진다. 화려했던 날들은 한바탕 꿈이고 지나온 희로애락은 봄날 아지랑이처럼 아스라하다. 그렇다고 허탄해 할 일이 아니다. 달려온 길모퉁이마다 쉽게 털어낼 수 없는 짙은 향훈이 남아있고 자식 손자들이 그 향을 맡으며 또 똑같이 그 길을 걸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희생과 헌신의 전형을 보여준 최 박사에게 그리고 조금씩 모양은 달라도 똑같이 그런 길을 걸어온 이 땅의 모든 어르신들께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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