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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0/20] 돈으로 살 수 없는 '감정'

김완신/논설실장

노동은 전통적으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으로 구분돼 왔다. 여기에 사회학자 앨리 혹실드는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라는 개념을 추가시켰다. 혹실드는 1983년 발표한 저서 '감정노동'에서 고객들로부터 모욕을 당해도 참고 견디면서 감정을 조절해야 하는 노동자들을 소개했다. 이른바 '감정 노동자'들이다. 이때 예로 들었던 직종이 바로 델타 항공사의 스튜어디스다.

책은 델타 항공사가 승무원 교육을 하면서 직원들에게 요구하는 지침을 소개하고 있다.

'여러분 근무할 때는 진심을 담아 웃어야 합니다. 미소는 여러분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나가서 그 자산을 활용하세요. 웃으세요. 진심을 담아서 활짝 웃으세요.'

진심에서 우러나올 때 고객들에게 웃음을 보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가 않다. 이런 웃음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러나 웃음이 나올 상황이 아닐 때 웃는 것은 고통이다. 결국 진정성이 없는 웃음은 판매를 위한 가식적인 수단으로 전락한다.



항공기 승무원은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노동을 동시에 수행하는 직업인이다. 승객에게 제공하는 기내 서비스에는 1차적으로 육체적 노동이 필요하다. 음식을 서빙하고 수화물을 정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육체 노동외에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정신적 영역의 노동도 존재한다. 여기에 추가되는 것이 승객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정노동이다.

지난 15일 인천공항에서 LA로 오는 대한항공 비즈니스석에 탑승했던 포스코에너지의 한 임원이 음식문제로 불만을 표시하다가 잡지책으로 승무원의 얼굴을 때린 사건이 발생했다. 승객과 승무원 사이에 오갔던 대화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급격히 확산되면서 해당 임원에 대한 비난이 폭주했다. 결국 포스코에너지는 여론에 밀려 임원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임원은 사표에서 "한 사회의 구성원이자 기업 임원으로서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해당 항공사 및 승무원께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네티즌들의 마녀사냥식 신상털기에 희생양이 됐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 임원은 고객으로서 자신이 가진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승무원에게 감정적.신체적 폭력을 행사한 것만은 분명하다.

종업원과 고객이 수평적 관계에서 서비스를 주고 받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는 고객은 항상 '갑'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또한 업주가 종업원이 받는 부당한 대우는 생각하지 않고 고객에 대한 무조건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면서 감정 노동자들이 받는 마음의 상처는 커진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했던 이전 시대에는 감정노동이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서비스업의 발달로 감정노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제 감정노동은 단순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업종까지 확장되고 있다. 의사 변호사 심지어 경찰관까지도 감정 노동자의 범주에 포함하기도 한다. 경찰관도 '대민 서비스'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감정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감정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감정 노동자들로부터 상품.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된다. 상거래에서 불필요하게 생기는 감정상의 불화는 상호간의 노력으로 충분히 예방 가능하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돈으로 종업원의 진심을 살 수 있지만 반대로 종업원의 마음에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그 임원의 항공료에 승무원의 '마음값'까지 포함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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