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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포커스] 큰 사람 '반동분자 김지하'

김동필/취재 에디터

80년대 대학 캠퍼스는 '타는 목마름'의 시대였다. 김지하의 시에 곡을 입힌 노래는 시위 현장이나 '나랏일'을 걱정하며 열변을 토하는 술자리에서나 빠지지가 않았다.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 민주주의여 만세'라는 노랫말은 군사정권에 대한 청년들의 분노를 대변했고 '시인 김지하'는 저항정신의 아이콘이었다.

시인 김지하를 LA에서 볼 수 있었다. 이달 중순 열렸던 김지하 LA강연회 덕분이었다. 월요일 저녁 시간임에도 강연회장은 빈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시인 김지하'에 대한 관심과 인문학적 소양에 대한 한인들의 갈증때문인 듯했다.

그는 스스로를 '반동분자 김지하'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 지지 선언을 했던 것을 염두에 둔 모양이다. '김지하가 어떻게'라는 반대 진영의 거센 비난에 어찌보면 정공법으로 맞선 셈이다. 당시 LA에서도 '왜'라는 궁금증이 많았다고 물었더니 "대선 전에 (박근혜를)한번 만났는데 눈빛이 살아있더라고. 오기랄까 독기랄까. 그거 좋은 쪽으로 활용하면 좋은 정치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치적 판단은 접어두고 싶다. 다만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던 정권의 최고 책임자 딸도 지지할 수 있다는 의연함이 놀라웠다. 그는 자신을 중도라고 했다. 중도는 좌우 사이의 어정쩡한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좌우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라는 중도론도 밝혔다.



김 시인은 강연에서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문화사적 시각으로 조명해 호응을 얻었다. 해박한 인문학적 식견을 바탕으로 문화 역량과 창조적 정신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의 강연 내용은 인터넷 방송인 소중한 TV(tv.koreadaily.com)를 통해 다시 볼 수 있어 이쯤만 소개한다.

김 시인의 강연회는 어렵게 성사됐다. 원래 이번 미국 방문에는 스탠포드대학 특강만 예정되어 있었지만 김 시인의 수락과 스탠포드대 아.태연구소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 덕분에 김 시인은 5박6일의 짧은 기간 동안 강행군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LA한인들을 위해 별도의 강연 원고를 준비할만큼 열정을 보였다. 강연 시간도 당초 1시간~1시간 30분 정도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2시간 30분으로 길어졌다. 피곤하지 않냐고 했더니 "(높은 관심에)흥분했었나 봐"라고 했다.

칠순을 넘겨 지팡이에 의지하는 초로의 모습이었지만 그의 눈빛과 신념은 여전했다. 그리고 기자에게 "김형 앞으로는 해양경제 시대야. 잘 연구해봐"라는 과제를 던지고 LA를 떠났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인고의 세월을 함께 한 반려자가 있다.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이다. 김 이사장은 잘 알려진 대로 고 박경리 작가의 딸이기도 하다. 지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김 시인에게 사형이 구형될 당시 김 이사장은 법정에서 어린 아들을 안고 이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도 결코 평탄하지는 않았다. 인고의 세월을 견뎌냈다는 생각에 굉장히 강한 분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온화하고 겸손하고 소박한 모습이었다. 시대와 사람에 대한 증오와 분노 원망을 사랑과 평화로 치환한 듯했다.

40세 이후의 얼굴은 본인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다. 접촉하기 싫은 사람 보다는 만나고 싶은 사람이 짜증 보다는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모처럼 큰 사람 향기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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