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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조선 선비를 흉내내다

[LA중앙일보] 발행 2013/05/28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3/05/27 14:33

이종호·편집팀장

시 낭송회를 했다
모두 열심히 준비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 조선은 선비의 나라였다. 선비란 단순히 유교적 교양을 갖춘 양반들이 아니라 인격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을 닦고 덕성을 도야하는 학인(學人)을 지칭했다. 풍류와 낭만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으로 수시로 벗들을 불러 시회(詩會)를 즐겼다. 시회란 글자 그대로 시모임이었다. 그냥 시를 암송하거나 낭독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제에 대해 누가 빨리 잘 짓는가를 견주는 내기 모임이었다. 학식과 경륜이 웬만하지 않고서는 끼일 수 없는 자리였던 것이다.

나도 한 때 그들을 부러워하며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에서 벗과 더불어 음풍농월(吟風弄月)하는 꿈을 꾸곤 했다. 하지만 제대로 뜻을 이루어 보진 못했다. 산천경개(山川景槪) 좋은 곳은 곧잘 찾았지만 옛 선비처럼 시 한 수 척척 지어낼 아니 읊어낼 깜냥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집에서나마 비슷한 흉내를 한 번 내봤다. 지인 부부들과의 모임을 통해서였다. 그냥 밥만 먹을 게 아니라 각자 좋아하는 시라도 한 편씩 암송해 보면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아내가 낸 것이다. 처음엔 다들 "어색하게 뭘 그런 걸…"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이내 기대와 호기심으로 태도가 바뀌었다.

모임이 있던 날 모두가 소풍나온 학동처럼 들떠있었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낭송할 시를 골랐다는 사람 학창 때 보던 시집을 몇 십 년 만에 다시 들춰봤다는 분 함께 시를 외우며 사이가 더 각별해졌다는 부부 등 저마다 새 경험의 경이로움을 얘기했다. 놀랍게도 자작시까지 지어온 분도 있었다. 평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던 1.5세 한 분은 누구보다 엄숙하게 우리말 시를 읊어 놓고 정작 뜻은 모르겠다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급조된 어설픈 '시회'였지만 모두가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 옛날부터 우리에겐 숭문(崇文)의 전통이 있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높이 평가해 왔으며 그런 사람을 선비라 칭하며 우러러 받들었다. 그러다보니 불학무식하다는 말처럼 모멸적인 언사가 없었고 박학다식하다는 것만큼 큰 칭찬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인식도 점점 퇴색이 되고 있다. 특히 이민 생활이 더 그렇다. 살아 내는 것 자체가 '전투'이다 보니 시는커녕 신문 한 장 책 한 페이지 읽을 여유조차 없다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렇지만 이번 낭송회를 통해 이민자라 해서 문학적 정서의 바닥 샘물까지 다 말라버린 것은 아님을 알게 됐다.

바쁜 이민 생활 정신줄 놓고 달리다 보면 멋도 없고 맛도 없이 한 세월 끝나버릴 수도 있다. 그런 비극(?)을 막아주는 예방주사가 문학이고 예술이다. 새로운 도전이고 색다른 시도이며 새겨둘 만한 경험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늘 상상하고 욕망한다는 데 있다. 의식주가 생명의 기본이라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살 수는 없다. 낯선 곳을 여행하고 영화나 뮤지컬을 감상하며 전시장.공연장을 일부러라도 찾아가는 것도 그래서이리라.

조선이 500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사회 지도층이 권력이나 경제력으로써 만이 아니라 학문과 인격에서도 백성의 존경과 복종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양반들이 어려서부터 시를 짓고 경전을 암송하며 도덕교육까지 철저히 받았던 것도 일치감치 이런 인문(人文)의 힘을 간파한 까닭이 아니었을까.

언제부턴가 한인사회도 경제력 정치력 신장이 화두가 됐다. 거기에 이제 또 하나를 더할 때가 됐다. 바로 문화력(文化力)이다. 커뮤니티의 지적 정신적 품격을 가늠하는 인문학적 역량 말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글에 대한 책에 대한 모든 활자에 대한 소소한 관심에서부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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