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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전언론인 이경원씨: 비극 재발 막는 건 젊은이들의 몫

10년전, 지금에 와서는 영겁처럼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던 그 때, 한인타운은 화염에 휩싸여 무너져 내렸다.

씻을 수 없는 한을 간직한 우리 미주한인들은 당시를 ‘사이구’라 부른다.

4·29 폭동은 남가주의 25만이 넘는 한인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우리는 ‘자유의 땅’ 미국에서 꿈꿔온 ‘아메리칸 드림’이 하룻밤새 연기와 함께 스러지는 광경을 보며 이민자로서의 우리 처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당시의 참상은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한인으로 태어난 것이 죄인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고많은 인종, 민족 중 왜 우리 한인들이 당해야 하나’라는 절규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역사’라는 차가운 조명아래 4·29를 살펴보면 4·29는 LA도심의 구조적, 인종적 문제의 손쉬운 희생양으로 코리언 아메리칸을 점찍은 기획된 인종전쟁으로 볼 수 있다.

아랍인의 9·11테러 희생자들을 위해 미전국에서 몰려든 성금은 수십억에 달했고 구호의 손길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주류사회의 눈에 띄지 않는 한인 희생자들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침묵속에 고통을 삼키고 있다.

미디어에 의해 증폭된 인종갈등에 불타고 약탈당한 한인들은 미디어에 의해 비난받고 상처입고 학대당한데다 폭동원인의 제공자로 단죄되기까지 했으며 끝없는 미국의 인종문제의 참혹한 한 페이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망각의 힘을 빌어 진실을 덮고 있다.

10년 전 주류사회의 권력(시청, LAPD, 검찰, 법원, 그리고 무엇보다 미디어)은 힘없는 유색인종이 피해를 입는 것보다 소요사태가 와츠폭동처럼 심화되지 않도록 방향을 전환시키는데 골몰했다.

애초 폭동의 발단은 로드니 킹 구타사건과 그를 구타한 4명의 백인 경찰의 무죄평결이었으나 사법기관과 지역 보도매체들은 중립적인 조정자 역할을 표방하면서 잔혹한 경찰과 빈곤, 인종 등의 사회문제에 대한 분노를 한흑갈등으로 변질시켰다.

미국의 방송과 할리웃에서 한인을 불쌍하고 무방비상태의 영어를 못하는 상인으로 묘사해온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당시 미디어는 흑인의 한인에 대한 증오를 조장했다.

폭동 1년전 물건을 훔쳐 달아나던 흑인소녀를 사살한 두순자 여인의 모습은 폭동 당시 시청률에 혈안이 된 미디어에 의해 무참히 구타당하는 로드니 킹의 화면과 함께 수백만 시청자들에게 각인됐다.

그동안 수많은 한인이 우범지역에 위치한 자신의 업소에서 강도당하고 총에 맞고 죽어간 사실은 미디어의 선정적인 보도에 매몰돼 잊혀지고 총에 맞아 숨진 흑인소녀의 모습은 로드니 킹 구타장면과 함께 한흑간의 인종전쟁으로 변질된 것이다.

폭동이 고조되던 시점엔 ABC와 로컬 ABC방송은 1년전 두순자 여인의 업소에서 등에 총을 맞고 쓰러지던 소녀의 모습이 담긴 방범 카메라 녹화장면을 로드니 킹 구타장면만큼이나 자주 방영했다.

남가주대의 연구에 따르면 1991년의 한인에 대한 흑인의 혐오범죄는 한흑간 갈등을 조장하는 보도의 영향으로 30건이 신고됐다고 한다. 그 연구는 신고된 혐오범죄가 ‘미디어에 의해 조장되고 고조된 것’이라 지적했다 한다.

1990년 3월에서 1991년 3월에 이르기까지 흑인에 의한 혐오범죄 신고는 거의 없었으나 두순자 여인 관련 보도 이후인 1991년 4월엔 6건이 발생한다. 당시 이 사건을 탑뉴스로 다룬 LA 타임스 등의 언론매체는 사건을 ‘한인 식품점 여주인이 1달러 79센트자리 오렌지 주스때문에 10대 흑인소녀를 쏴죽였다’는 식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미주한인들의 시각은 폭동과정 내내 지역과 전국 매체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TV에선 사법기관으로부터 버림받고 자신의 업소지붕에서 무장한 폭도들에게 사격을 가하는 장면을 끝없이 반복했다.

치안력은 베벌리힐스 지역의 부촌에 집중됐고 부시 대통령 등의 피해보상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턱없이 모자란 보상은 피해자들의 상처를 헤집었고 LA시와 가주 정치인들은 분열되고 힘없는 한인들이 왜 피해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었다.

4·29는 한인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 절반에 이르는 피해자들은 재기에 실패하고 소리없이 사라졌고 30%의 피해자만이 폐허가 된 업소에서 영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파산, 가정폭력, 알콜중독, 이혼, 자살의 물결이 피해자들을 휩쓸었다.

하지만 4·29의 가장 씁쓸한 교훈은 우리 한인들이 역사로부터 배운 것이 없거나 아주 적다는 것이다. LA한인타운과 미 전역의 한인들은 기억을 상실한 몽유병자처럼 마치 10년전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한인들은 우리의 라티노와 흑인이웃 사이의 인종갈등이 증폭되는 것에 대해 여전히 둔감하다.

그러나 4·29는 한인사회의 리더십이 희생과 침묵으로 대변되는 1세들로부터 1.5세와 2세들에게 전달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1세들의 한은 제2의 4·29를 방지하기 위해 10년전의 교훈을 잊지 않고 노력하는 젊은이들을 통해 극복될 것이다.

영어를 못해 반 장님, 반 귀머거리로 살아야 했던 부모세대를 위해 침묵을 깨고 전세계를 향해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한 4·29세대 젊은이들은 또 다른 4·29가 발생하면 최일선과 마지노선에서 침묵과 희생의 세대를 지키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74세로 인생의 황혼길을 걷는 지금, 내겐 4·29의 아이들과 나눌만한 지혜가 별로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태양은 모든 세대에게 떠오른다. 그리고 너희들의 세대는 이 광활한 땅에서 한인역사를 관통해온 한에서 해방된 첫번째 세대가 될 것이다. 강을 건널 때 우리의 한일랑 이편에 남겨두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우리의 꿈과 희망을 간직하고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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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74세
- 웨스트 버지니아대, 일리노이대에서 저널리즘 전공
- 최초의 아시아계 미주류 일간지 기자
-새크라멘토 유니언지 심층보도 책임자
- 최초의 영문 코리안 아메리칸 전국지 ‘코리아타운 위클리’ 발간
-코리안 아메리칸 저널리스트 협회 창립회장
-새크라멘토 주립대 출강
-수상경력:LA 한인타운의 폭동 후유증을 다뤄 수상한 잔 앤슨 포드상 외 28개 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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