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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1달러 지폐 속의 이집트

[LA중앙일보] 발행 2013/07/09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3/07/08 18:01

이종호/편집팀장

이집트는 가보지 않았어도 가본듯한 나라다. 피라미드, 나일강, 파라오, 미라, 파피루스, 클레오파트라…. 이집트 하면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이런 이름들은 이집트가 아득한 고대 역사가 아니라 그냥 가까운 요즘 이웃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의 상고사가 거의 전설과 전승과 얕은 몇몇 기록에 의지하는 것에 비해 뚜렷이 남아있는 무수한 유물 유적들 또한 우리에겐 경이로움이고 부러움이다.

미국 속에도 이집트는 알게 모르게 깊숙이 들어와 있다. 1달러 지폐 뒷면엔 이집트 피라미드 그림이 있다. 그 꼭대기에 그려져 있는 눈은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라(Ra)'를 상징한다는 얘기가 있다. 수도 워싱턴DC에 세워진 조지 워싱턴 기념탑도 고대 이집트의 사각 돌기둥인 오벨리스크 모양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이집트는 이스라엘 만큼이나 친숙(?)하다. 애굽(이집트), 바로왕(파라오), 요셉, 모세, 시내산, 홍해 기적을 빼고서는 성경도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세상을 호령하던 파라오는 사라졌고 영광의 신전들은 사막 모래 바람에 스러져 잔해만 남았다. 태양신을 받들고 파라오에 순종했던 이집트인들은 이제 알라신을 섬기고 마호메트의 가르침에 따른다. 8000만 인구의 90%가 그렇다. 나머지 10%는 이집트식 기독교인 콥트교도들이다.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오랜 피지배의 역사가 있었다. 앗시리아, 페르시아, 알렉산더 대왕, 로마, 비잔틴 등이 2000년 이상 이집트를 침탈하고 다스렸다. 7~12세기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걸친 세 대륙을 휘저었던 이슬람 왕조 사라센은 끝내 이집트를 아랍화시켰다.

이집트의 현대사는 외세와 종교와 군부의 각축 속에 한층 더 복잡해졌다. 몇 번의 전쟁까지 치른 이스라엘도 이집트의 오늘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다. 1970년대 말 이후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승인하고 공존의 길을 걷고 있다. 여기엔 미국의 압력과 중재가 절대적이었다.

이집트는 아랍국가로는 드물게 일찌감치 반미, 반이스라엘 정책을 접었다. 그 대가로 매년 15억달러 이상의 군사적 경제적 원조를 미국으로부터 받고 있다. 이집트의 일거수일투족에 지금도 미국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이집트가 다시 세계 뉴스의 한복판에 섰다. 2년 전 이집트인들은 30년 독재자 무바라크를 몰아내면서 '아랍의 봄'을 구가했다. 이번은 양상이 다르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무르시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대의 지지를 등에 업은 군부에 의해 1년 만에 쫓겨났다. 독선과 부패와 종교적 편향이 국민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지 못한 것이 1차적 원인이었다. 그 이면엔 이슬람 근본주의와 자유 세속주의의 대립도 작용했다.

작금의 이집트 정국은 4·19, 5·16으로 이어진 1960년대 한국을 떠올리게 한다. 뿐만 아니라 선거를 통해 집권한 민주정부를 다수 국민이 반대한다고 해서 군부가 그냥 밀어내도 괜찮은가 하는 질문도 다시 하게 만든다.

권력과 정당성이라는 양대 축으로 지탱되는 것이 정치다. 힘을 갖지 못한 정당성은 나약하고 정당성을 결여한 권력 또한 결국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하지만 국민의 밥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는 아무리 힘이 있고, 아무리 정당성이 있어도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역사의 실증이다.

이집트의 앞날은 혼미하다. 무르시 대통령의 축출에 대한 미국의 입장도 아직은 어정쩡하다. 지지파와 반대파는 무력 충돌은 자칫 내전까지 우려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을 꽃피웠던 시원(始原)의 땅 이집트가 어떤 모습으로 다시 서게 될지 세계는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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