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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구름이 머무는 곳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3/07/09 미주판 19면 기사입력 2013/07/09 06:12

한국 지리산은 그 깊이가 깊고 그 크기가 크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는 등산길은 하루에 끝나지 않는다. 능선을 따라 하루 종일 산행을 하다 저녁 무렵이 되면 오늘은 어디에 잠자리를 마련할까 하며 마땅한 야영장소를 찾아보게 된다.

아늑해 보이는 야영지를 발견하면 땅을 고르고 천막을 치고 낙엽을 깔고 담요를 펴고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주변 경관을 보고 때로는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을 동료와 주고 받는다. 우리 여기 이대로 오래오래 머무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사람이 사는 평생을 나그네 길에 빗대어 말한다. 나그네로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다 보면 어느 마을에서는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냥 여기에서 오래 살고 싶다 하는 마음으로 가만히 서서 오도가도 못하고 망설이며 정이 가는 그 마을의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보게 된다.

살아가는 길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좋은 경치나 마을뿐만은 아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가며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되는데 사람들을 만나고 생업을 만나고 사건을 만나고 진귀한 사물을 보게 된다. 어떤 것은 지나가 버리고 잊어버리고 어떤 것은 가슴 깊이 새겨지기도 하고 때로는 붙들고 놓아 주지 않아 평생에 같이 가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잠시 들렸던 길이 그만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이 되어 버린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사람, 한국문화, 한국음식, 한국자연 등 그 중에 하나가 한국이 타향인 그들에게 고향처럼 느껴지는 무엇이 되어 그 발길을 잡아 놓은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머무르게 된 것은 아마도 그들 속에 자신들도 모르고 있던 한국적 심성이라는 태생적 속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의자에 앉아 자라난 사람이 뜨듯한 온돌에 털썩 주저앉아 보고 이거 아주 좋네 하며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떤 작가는 가슴 뛰는 일을 하며 살자고 말했다. 살면서 가슴 뛰는 일을 만나는 것은 정말 행복한 것이다. 그렇게 머무를 수 있는 생업을 만나면 그 삶이 빛이 나고 신이 나고 생명력을 갖게 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길을 정하고 눈비 상관없이 그 길로 나아가는 것은 어떤 끌림이나 마음으로 듣는 어떤 음성을 받아들인 결과다. 행복한 머무름이라 부를 수 있다.

특별히 사람이라는 존재는 머무르는 곳이 아주 중요하다. 옆을 스치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말을 주고 받고 손 맞추어 무엇인가 해내고 그러다가 서로의 박자가 기분 좋게 맞아 들어가면 부부라는 이름의 사이로 머무르게 된다.

미국 땅 넓은 대륙을 다녀 보면 대륙 깊숙한 곳에도 많은 마을들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연으로 이곳까지 와서 머물러 살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이들도 원래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아니었을 터이고 이들이나 그들 조상 누군가가 마차 타고 하염없이 나아가다가 여기에서 멈추어 눌러 살기 시작함으로 이 고장 사람으로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을 것이다.

더욱이 드물지 않게 이런 곳에서도 사업을 일구고 정 붙여 사는 한국인들을 만나게 되면 머물러 사는 것의 신기함을 보는 듯하다. 혹시 이 한국인들은 천성적으로 여기 미국대륙의 성격을 지니고 태어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아시아 대륙을 달리던 기마민족의 기상을 아메리카 대륙에 심고 있는 것이라 믿어진다.

지리산처럼 큰 산을 오르다 보면 깊은 골짜기와 높은 산봉우리에 여러 모양의 구름이 머물러 있는 것이 눈이 띈다. 세월이 가면 그 구름들은 물방울이 되어 그곳을 적시고 사라진다. 아니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그곳에서 생명을 만드는 생수로 변하여 나무도 되고 풀도 되고 꽃과 열매도 되고 노루 사슴의 갈증도 달래어준다. 떠도는 구름의 꿈이다. 머무르는 구름의 바람이다.

안 성 남
중앙일보 문학교실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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