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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통치하기 위해 태어난' 로열 베이비

김완신/논설실장

23일자 미국 주류신문에서 크게 보도한 기사가 있다. 전날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부부의 첫 아기 출생소식이다. LA타임스는 1면에 '왕자가 도착했다'라는 제목의 기사와 버킹엄궁 앞에 모여든 축하군중 사진을 게재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해외순방인 브라질 방문 소식보다 영국 왕자의 탄생을 더 비중있게 다뤘다.

2011년 4월 미국 남동부 지역에 불어닥친 강력한 토네이도로 324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가 있었다. 토네이토 희생자로 미전역이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영국에서 전해진 소식이 바로 윌리엄과 미들턴의 결혼식이었다. 이번에 태어난 왕자의 부모다. 미국 언론은 토네이도 뉴스를 줄이고 대대적으로 세기의 결혼과 축제 분위기를 전했다.

영국왕실에 대한 미국민들의 관심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이유 중 하나는 역사가 일천한 미국민들에게 전통과 권위의 상징인 영국왕실은 선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계 최강국을 건설했지만 자신들의 뿌리가 영국인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지구촌에 왕이 존재하는 국가는 45개국 정도다. 유럽의 경우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와 동구권 국가들이 군주제를 포기해 영국, 스웨덴, 스페인, 노르웨이, 덴마크 등에 왕이 남아있다. 각국 왕실은 '군림은 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상징적 존재가 됐지만 영국은 여전히 세계의 왕실로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 여왕은 지금도 캐나다·호주·뉴질랜드를 포함한 영연방국가의 형식적인 국가원수다.



역사학자들은 입헌군주제의 가장 큰 장점으로 정신적 지주로서의 '왕'의 역할을 강조한다. 2000년 초반 한국에서도 국민을 대표하는 왕을 추대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현실성은 없었지만 지도자 부재의 시대에 왕의 권위에 대한 동경이었다.

왕은 일반적인 지도자와는 다르다. 중국의 한비자는 지도자의 덕목으로 법(法)·술(術)·세(勢)를 강조한다. 통치를 하려면 바른 법과 국민들이 법을 지키도록 하는 기술, 그리고 법과 술을 집행하기 위한 추진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왕의 '혈통'은 이런 모든 덕목에 우선하는 절대성을 갖는다. 이번 영국왕자도 '통치하기 위해 태어났고(Born to Rule)', 적자혈통이라 삼촌 해리 왕자를 제치고 왕위계승 3번째에 올랐다.

한국에서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 발언을 놓고 정치권이 뜨겁다. 논란이 커지면서 국가기록원 원본을 확인하기에 이르렀지만 자료를 찾지 못했다. 여당은 노무현 정부가 회담록을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하지 않았다는 입장이고 야당은 이명박 정권의 폐기 가능성을 주장한다.

정치 싸움은 각 당의 입장만 내세우면서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생각해야 할 정치인들은 북방한계선과 정상회담 대화록이라는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 반드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명분도 아전인수 식의 변명으로만 들린다.

한국의 정치인들에게서 지도자의 덕목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고 국정을 조언하고 국민을 통합할 신성한 '혈통'이 군림하는 것도 아니다. 왕실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민의 구심점이 됐고 분열된 정치권의 중재자 역할을 했다. 영국왕실 소식을 접하면서 한국에도 정치권을 질책할 왕이 존재했으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불가능한 공상이기는 하지만 정치인들에게 미덕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더 현실성 있는 방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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