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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구요'

부소현/JTBC LA특파원·차장

최근 빠져있는 코미디 코너가 있다. 개그콘서트의 '뿜 엔터테이먼트.' 자기 내키는 대로 대본을 바꿔 버리는 안하무인 여배우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뭐든 스태프를 시키는 콧대 높은 가수, 시구 한번 하게 해달라고 떼쓰는 철 없는 중견 배우 등 골칫거리 스타들을 관리하는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 얘기다. 코너에 나오는 개성있는 캐릭터들은 저마다 특이한 말투로 연방 웃음을 자아낸다. "나 갈게요. 수고할게요", "좋다 좋다 괜찮다", "나 좀 케어(care)해 주잖아" 등 다양하다. 코미디에서는 재미있는 소재인데 이런 말투를 일상에서 대하면 당황스럽다.

3~4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해 백화점에 들렀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어 가격을 물으니 "0000원 이십니다"란다.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지만 개인적인 말투려니 하고 말았다. 다른 매장에 가서 물건을 사려고 카운터 앞에 섰더니 점원이 다가와 "계산 도와 드릴게요"라며 방긋 웃는다. '이건 또 뭐지?' 순간 혼동이 왔다. '도와 준다니 물건값을 깎아준다는 소린가? 설마 돈을 보태 준다는 뜻? 지갑에서 돈 꺼내는 걸 도와 주겠다는 건 아닐 테고….' 백화점뿐 아니라 식당이나 병원 심지어 관공서에서도 예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어색한 표현들이 난무했다.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구요", "조금 기다려 주실게요", "신상품이십니다" 말의 주체가 누구이고 존대를 받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말들이 넘쳐났다. 심지어 이렇게 무작정 존댓말을 해야 상대에게 겸손하고 친절하다는 평가를 받는 듯했다.

시작이 언제인지는 불분명하나 이런 표현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 다양해지고 일반화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앞에서 말한 코미디 프로그램도 아마 이런 세태를 반영한 듯하다. 요즘에는 LA에서도 이런 표현들을 종종 듣게 된다. 한국 유행이 가장 빨리 전달되는 곳이니 당연하다. 존댓말을 쓰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반말보다는 상대방을 높여 주는 말이 듣기 좋은 것은 맞다. 때와 장소, 상대에 따라 쓰는 다양한 존댓말이 있다는 것은 우리말이 다른 언어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사물에까지 존댓말을 붙여 말의 주체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표현은 옳지 않다.

신문과 다르게 방송은 경어로 시작해서 경어로 끝난다. 우리말의 경어법에는 상대적으로 하대어도 분류돼 있지만 드라마나 코미디 프로그램을 비롯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방송에서는 항상 시청자 중심의 경어를 써야 한다. 그러나 지나친 경칭을 쓰거나 시청자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정도의 경어는 피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통령께서 들어오시고 계십니다"보다는 "대통령이 입장하고 있습니다"가 듣기 편하다. 가능하면 쉽고 명료하게 쓰는 것도 중요하다. 강건체가 아닌 우유체, 화려체가 아닌 건조체, 만연체가 아닌 간결체가 우선시 된다. 방송기자가 지켜야 하는 방송언어의 원칙을 강요하려는 건 아니다. 지나친 존댓말보다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돈된 표현의 전달력이 더 뛰어나다는 점을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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