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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시간'의 흔적을 생각하는 시간

구혜영/사회부 기자

# 멈춘 시간.

한국전 정전협정 6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7월26일, 함경남도 도민회 모임에서 조식원(87)씨를 만났다. 곧 아흔을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엄마'라는 말에 눈물을 쏟았다. 그는 1950년 12월6일 원산항 부두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엄마와 헤어졌다. "한 달 후에 만나자"라는 약속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조씨가 어머니께 올린 편지를 보여줬다. '63년 만에 어머님께 드리는 글'이란 문장으로 시작한 편지는 "이 불효자식의 생명을 구해준 배에서 지금 어머님을 불러봅니다. 고향길이 열리는 날, 찾아뵙고 속죄의 큰절을 올리겠습니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시간이라는 게 참 신기해. 멈춰있는 것 같아. 난 아직도 스물네살 같고…. 철조망 사이로 '엄마'를 부르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 가는 시간.

며칠 전, 한 유명작가의 인터뷰를 마친 선배가 신선한(?) 질문을 했다. 시간의 정의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장점과 단점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화의 일부분은 다음과 같다.

선배: 시간이 너에게 행복함을 선사할 때는 언제니? 아닐 때는 언제고?

나: '이것조차 다 지나갈 거다' 라는 말이 현실로 찾아왔을 때, 나이가 먹으면서 예전보단 아주 조금 '뭔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좋음.

선배: 싫을 때는?

나: '역시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 때, 어른과 성인의 차이를 스스로 허물고 싶을 때 싫음.

선배: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성인은 물리적인 나이를 먹는 거잖아요. 누구나 스무 해만 견디면 성인이 되지만, 어른은 나이만 먹는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가끔 '나 나이 이만큼 먹을 만큼 먹었어. 그러니까 이렇게 해도 되지?' 이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시작하는 나를 볼 때, 창피함. 멍청한 짓임.

선배: 그런데 꼭 어른이 돼야해?

나: ….

# 느린 시간.

9일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어떤 모임에서 '21세기 사회구조와 인간관계'에 대한 강연을 했다. 교육을 마치 서비스처럼 '팔아야하는' 학교와 스펙 위주의 인재채용, 친구와 이웃이 없는 삶 등을 꼬집으며 "우리 모두 초 합리적인 바보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종이에 여러 번 적었다. "느린 시간, 멈추어 있을 장소, 느슨한 관계."

위 글은 지난 한 달간 '시간'에 대해 짧게나마 고민했던 흔적이다. 시간이 녹아있는 이야기와 시간이 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을 고르고 싶었다.

평소 "시간없어", "대충해", "시간이 남아 도냐?" 등과 같은 말을 자주 듣고, 자주 한다. 시간을 구속하고 나누다가 순간 멈칫한다. 시간은 멈추어 있기도 하고, 느리기도 하고, 흐르기도 한다. 그런데, '없는 시간'은 아무리 생각해도 존재의 흔적조차 없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결국 기억할 것도, 잃어버릴 것도 없는, 허무한 핑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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