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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0/20]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루지 못한 꿈'

김완신/논설실장

1863년 1월 1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을 선언한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주들의 군사·경제 기반을 와해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지만 노예해방 선언은 310만~400만명의 흑인노예에게 자유를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4년간의 전투로 60여만명의 사상자를 가져온 남북전쟁이 남긴 위대한 유산이었다.

그후 100년이 지난 1963년 8월 28일.

워싱턴DC에서는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평등을 외치는 집회가 열렸다. 그 중심에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있었다. 25만명이 참가한 행사에서 킹 목사는 "노예해방 선언 후 10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흑인에게 자유는 없다"로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나라, 불의가 정의로 바뀌는 나라,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닌 각자의 특성으로 판단되는 나라, 흑인 소년소녀들이 백인 소년소녀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잡는 그런 나라를 꿈꿨다. 모든 산으로부터 자유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미국을 소원했다.



20세기 최고의 명연설로 뽑힌 킹 목사의 워싱턴 스피치 원문에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내용은 없었다고 한다. 초안을 작성했던 클래런스 존스는 최근 인터뷰에서, 원안이나 킹 목사의 최종문안에도 '꿈'은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행사에 참여했던 뮤직션 마힐리아 잭슨의 요청에 킹 목사가 즉석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연설에 추가했던 것이다. 간결하면서도 깊은 호소력으로 인종차별의 종언을 외치는 이 연설은 미국 민권운동의 분수령이 됐고 민권법과 투표권법 제정으로 어어졌다.

다시 50년 후 2013년 8월 24일.

마틴 루터 킹 3세가 워싱턴DC 링컨 기념관 앞에 서서 외쳤다.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아버지의 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 과제는 지금도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노예해방 선언 후 100년이 지나고 또다른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킹 목사의 꿈은 미완성이다.

25일 월스트리트저널과 NBC가 공동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킹 목사의 꿈이 이뤄졌다'고 답한 흑인은 20%에 불과했다. 1963년 흑인가구 소득수준은 백인의 58%였지만 지금도 이 비율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실업률은 흑인이 백인에 비해 2배나 높다. 흑인 빈곤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상위계층으로 가는 것은 이루기 힘든 '꿈'이다.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을 살해한 지머먼에 대한 평결도 옮고 그름을 떠나 미국사회에 흑백문제가 여전히 불편한, 잠재적 갈등임을 보여준다. 킹 목사의 꿈은 꿈으로만 남아있다.

오늘 8월 28일.

워싱턴 대행진 50주년을 맞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링컨 기념관에서 연설한다. 흑인들이 노예에서 해방된 지 150년, 민권법의 통과로 차별을 사라진 지 49년, 미국시민으로서 투표권이 주어진 지 48년 만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연설을 한다. 소수인권을 주제로 연설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오바마는 아마도 킹 목사의 말처럼 "지금은 어둡고 황량한 차별의 계곡을 박차고 나와 햇빛이 찬란하게 비치는 인종화합의 길로 가야 한다"고 외칠 것이다. 다시 '꿈'을 이야기할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생전에 "인종차별은 죽음을 맞이했고 이제 남은 것은 장례식 뿐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떠난 후 반세기가 지나도 장례식은 치러지지 못하고 있다. '어둡고 황량한 차별의 계곡'에서 또다른 50년이 흘러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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