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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복수-황금심씨 아들 성가가수로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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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02/10/30 라이프 7면 입력 2002/10/29 14:46 수정 2002/11/01 17:00

“먼저 성가피정을 시작하기 전에 저의 아버님의 노래인 ‘짝사랑’과 어머님의 히트곡인 ‘알뜰한 당신’을 불러 드리겠습니다.”

우리 가요계의 굵직한 버팀목 가수부부였던 고복수-황금심씨의 아들부부가 지난 24일(목) 한인타운 6가에 위치한 성바실한인성당(본당신부 박병준) 회관에서 ‘성가피정’을 가졌다.

고영민(45, 안드레아)-손현희(40,데레사)씨 부부. 이들 부부는 현재 서울대교구 성령쇄신봉사회에서 각각 음악부장과 부회장을 맡고 있다. LA에서의 고씨 부부 성가피정은 이번이 처음.

고영민씨의 부친인 고복수씨는 “아~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의 ‘짝사랑’을 부른 해방전후의 한국가요계를 자리매김한 원로가수.(71년 61세로 타계)

모친인 황금심씨 역시 당대 연예계를 대표하는 가수의 여왕으로 “알뜰한 당신이 내마음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나요”란 노래가사를 유행시킨 히트곡 ‘알뜰한 당신’을 부른 주인공.(2001년 81세로 타계)

고영민씨는 3남2녀 중 차남으로 서열은 네번째. 형은 현재 한국에서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정에 약한 남자’를 부른 고영준씨, 남동생은 sbs의 ‘여인천하’에서 음악감독을 맡은 고병준씨.

큰 누나는 한국에서 동정녀(가톨릭에서 수녀원에 들어가지 않고 속세에서 결혼을 하지 않고 수도자 생활을 하는 여성)로 생활하고 있고 작은 누나는 결혼해서 살고 있다.

“한국에서도 저와 제 부모님이 가톨릭신자라고 하면 다들 언제 영세를 받았냐고 놀라는 분들이 많아요.”

이들 가족이 가톨릭신자가 된 것은 72년 고복수씨가 고혈압의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날때 영세를 받게 된 것이 계기였다. 그 전에는 가족 중 아무도 교회나 성당에 나간 적이 없었다.

“이상하게 아버님은 병원에 누워계실때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들어오면 화를 내고 나가라고 했어요. 그러다가 막상 임종때가 돼서는 그 신부님과 수녀님을 불러 영세를 받으셨지요.”

모친인 황금심씨는 “아버지가 신자가 됐으니 가족이 신자가 되는 것은 마땅한 도리”라며 고복수씨가 세상을 떠난 직후 3남2녀와 손자손녀를 모두 영세반에 들게 했다.

그때 고영민씨는 고등학생. 그러나 3년 다니다가 그후 15년동안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아버님은 매우 엄했어요. 아침 6시에 기상을 하지 않으면 한 겨울에도 얼음물을 끼얹을 정도였지요. 저와 제 형은 모두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절대로 연예계에는 발을 못딛게 하셨지요.”

배곯고 고달프다는 이유에서 였다. 대신 공무원이 대접도 받고 안정됐다며 공무원이 되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부친 타계 후 고씨는 끼를 버리지 못하고 마음에 맞는 친구끼리 밴드를 구성,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꿈이 ‘10대 가수왕’이 되는 것.

“그러니 어디 주일에 성당에 나갈 시간이 있었겠어요 ” 점점 세상에 빠져갔고 돈도 벌었다. 그리고 가수로서 인기도 얻었다. 이어 수순을 밟아 술과 도박, 여자와 마약에 손을 댔다.

“세상적으로 갖고 싶은 것을 얻기위해 시기와 질투, 모함을 하며 그야말로 진흙탕속에서 15년을 딩굴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가지면 가질수록 세상의 것은 더욱 고파지고 허해진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던 1990년 동정녀로 살고 있던 큰 누나가 모친과 고씨에게 3박4일 피정을 다녀올 것을 권했다.

차마 모친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피정에 참석했지만 강사의 말이 들어오지 않고 마음은 세상밖에만 가 있었다.

피정 이틀째 되는날 성체조배시간이었다.(성체란 하얀 밀떡처럼 생긴 것으로 가톨릭에서는 신앙으로 그것이 정말 예수의 몸이라 믿고 그 성체 앞에서 예수의 실존을 묵상한다.)

마음엔 딴생각으로 가득찬 채 시늉만 내고 성체앞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내 아들아, 내아들아”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눈을 떠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눈을 감은채였다.

그래서 다시 눈을 감았다. “아들아, 잘 와 주었다”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순간 뭔가 뜨거운 것이 자신을 힘껏 그러나 매우 부드럽게 감싸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래, 그동안 네가 어떻게 지냈고 또 세상속에서 얼마나 괴롭고 외로웠는지 내가 다 알고 있다” 하며 누군가 자신을 깊게 이해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순간 뭔가 뭉클한 것이 아래에서 위로 복받쳐 올랐다.

15년동안 교회를 등지고 세상을 벗삼으며 상처 받았던 영혼의 대성 통곡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누나와 모친인 황금심씨가 아들을 위해 15년을 기도한 결과라는 것도 알게 됐다.(황금심씨는 90년대에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을 정도로 자식들에게 신앙교육을 잘 시켰다.)

하느님을 맛 본 후부터는 밤무대에서 노래할 때마다 “내가 지금하고 있는 것이 술꾼들에게는 더 술독에 빠지게 하고 부정한 남녀들에게는 분위기를 조성해 더 타락하도록 조장하는 것”이란 죄책감이 더해가 결국 그만 두고 말았다. 그리고 성당에서 성가봉사자로만 활동하고 싶었다.

그리고 함께 부부 성가 봉사자로 활동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배우자를 만나게 해줄 것을 기도했다. 기도한 지 52일째 지금의 부인을 한 음악모임에서 만났다.

부인인 손현희씨는 83년 강변가요제에서 ‘이름없는 새’로 대상을 받은 후 방송 등에 출연하며 가수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손씨의 부친이 당시 영등포에서 유명한 철학원을 하고 있어 신자 사위를 적극 반대했다.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성당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랐어요. 다만 영세할 때 수녀님이 알려준 성모께 하는 묵주기도를 함께 했지요.”

기적처럼 1년후에 결혼허락이 떨어졌고 부부가 함께 원하던 ‘부부 성가 가수’로서 교회 봉사만을 할 것을 결심했다. 세상의 ‘스포트 라이트’의 맛을 본 연예인으로서는 정말 하기 힘든 결심이었다.

성당 봉사만을 하기때문에 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지하실 전세방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모두 풍족하게 살다가 생활의 바닥으로 갑자기 떨어지게 된 것. 그곳에서 첫 아이를 낳은 후 2층 전세를 얻어 이사했는데 그때 태양이 그렇게 좋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하느님은 연예인으로서 사치스런 생활속에 젖어있던 우리 부부를 가장 밑바닥의 생활로 초대해 없는 자의 서러움을 직접 느껴보게 한 것이지요. 그것이 봉사활동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들 부부는 성가 봉사외에 또 하나를 결혼초에 하느님께 약속했다. 요즘 가톨릭 신자들사이에서조차 잘 지켜지고 있지 않은 ‘낙태금지’를 철저히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딸 다섯을 두었다.(큰 아이가 16살, 2년 터울). “세상사람들은 아들욕심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절대 아닙니다. 어찌보면 가톨릭신자로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켰을 뿐이지요.”

그러나 솔직히 아이 다섯을 그것도 봉사활동만으로 키우자니 적지 않은 어려움도 많았다. 지금도 마찬가지. 그러나 “정말 필요할 때는 하느님이 직접 주신다”는 신앙체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은 없다.

그리고 자녀들도 자신처럼 ‘하느님의 법을 지키기 위해 가꺼이 세상의 바보로 살아가는 길’을 가게 해달라는 ‘자녀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김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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