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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두만강을 건넌 대니의 꿈

부소현/JTBC LA특파원·차장

눈으로 뒤덮인 두만강은 무섭고도 고요했다. 그 하얀 솜이불 같은 눈밭에 발을 내딛는 순간 목숨은 더이상 자신의 몫이 아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없다. 두만강을 건너지 않는다 해도 어차피 죽을 만큼 배가 고팠다.

대니를 만났다. 올해 26살, 미국에 온 지는 6년째다. 그는 함경북도 회령 출신 탈북자. 먹을 것을 구해 보겠다며 중국에 간 엄마가 5개월째 연락이 없자 탈북을 결심한다. 잡히면 죽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엄마를 만나 배를 마음껏 채울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유는 충분했다.

중국에서 어렵게 엄마를 찾았다. 노동을 하니 먹을 것도 생겼다. 하지만, 중국은 그에게 더 큰 굴레를 씌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공안에 잡힐 두려움에 떨었고 밤에는 악몽에 시달렸다. 중국으로 탈북했다 잡혀 북송된 사람들이 처형되는 모습은 어려서부터 숱하게 봐왔다. 그 생생한 기억들과 맞닿아 있는 현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태극 무늬가 그려진 비행기가 가슴을 뛰게 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목숨을 걸기로 한다. 이번에는 자유를 위해서다. 처음에는 한국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러다 미국 내 탈북자 지원단체인 LiNK(Liberty in North Korea)를 만났고 2007년 대니는 미국에 왔다.



그와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그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게 이유였다. 생활비와 학비를 벌어야 하는 그는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 뛴다. 틈나는 시간에는 공부가 우선이다. 한가로이 인터뷰를 하는 건 그에게는 사치였다.

간신히 부탁해 만난 그는 탈북자라기보다 한인 2세 같았다. 미국생활에 그만큼 적응해 있다는 말이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미국 시민권도 받았고 대통령 선거도 했다. 그러니 그에게 더는 탈북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대니와 인터뷰를 원했던 건 이념과 사회에 따른 삶의 변화를 전하고 싶어서였다. 8년 전 두만강을 건너지 않았으면 그는 아직 배불리 먹는 날만 기다리고 있어야 할거다. 어쩌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과 꿈을 꿀 수 인생은 그에게 행복 그 이상이다. 배고픔만 면하길 소망했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추석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명절이면 고향생각이 더 많이 난다고 했다. 고향은 그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주지도, 배불리 먹여 주지도 않았지만 그리움은 남겼다. 샌타모니카 바다에 가면 고향바다가 생각난다고 했다. 어린 시절 같이 놀던 친구들과 임종을 지키지 못한 할머니 생각에 마음이 아리다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지금 꿈꿀 수 있는 인생을 살게 된 것이 두고 온 친구들과 가족에게는 한없이 미안한 모양이다.

대니는 직장을 잡으면 한국에 있는 엄마를 미국에 정식으로 초청할 예정이다. 미국정부 관련 일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한가지. 생전 해보지 못한 연애도, 사랑도 하고 싶단다. 얼어붙은 두만강을 향한 도전은 그에겐 분명 가치있는 모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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