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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베이비 박스 그 후…

정구현/논설위원

전화를 끊고 나니 새벽 네시다.

가슴 아픈 소식에 잠은 달아난지 오래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 시작할 말을 고르지 못했다.

통화한 상대는 한국 서울 난곡동 '주사랑공동체'의 이종락(60) 목사다. 그는 '베이비 박스(Babybox)'를 만든 사람이다. 원치 않는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는 영아 의탁 바구니다. 2년 전 본지 특별섹션에 사연을 실었다. 버려진 장애 아기 20여명과, 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또, 이 베이비 박스가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불편한 논쟁도 보도했다.

이 목사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건 이유는 지난 주말 한국 언론에 실린 희소식 때문이다.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베이비 박스가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결정내렸단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이 목사의 목소리는 전보다 더 힘겹게 들렸다. 기쁜 소식이 많길 바랐던 기대는 욕심이었다.

지난해 8월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그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웠단다. 법은 아기를 입양 보내기 전 출생신고를 의무화했다. 입양 아동이 자랐을 때 본인의 뿌리를 찾게 해주기 위한 취지다.

시도는 좋았지만, 부작용은 컸다. 미혼에 아이를 낳았다는 '주홍글씨'를 피하기 위해 입양을 포기하고 아이를 버리는 부모들이 많아졌다. 법 개정 전 베이비 박스에는 한달에 3~4명의 아기가 놓여졌는데, 이젠 20명이 넘는다고 한다. 전국에서 아기를 버리러 온단다. 지난 2년간 그렇게 베이비 박스 놓인 생명은 298명이다.

아기를 버린 미혼모들의 아픔은 구체적이어서 변명처럼 들리지 않았다.

"갓 태어난 아기 목을 졸랐다가 풀었다가…", "아기 먹이고 나도 마시고 죽으려고 탄 약을 들었다가 놨다가…", "휴게소에서 퉁퉁 불은 우동 옆에 아기를 두고 일어섰다가 앉았다가…", "5만원은 아기 기저귀 사주세요(사진) ".

한번은 중학교 2학년 앳된 아이가 하혈을 하면서 아기를 안고 찾아왔단다. 집에서 혼자 애를 낳고 한 시간 만에 탯줄도 제대로 정리 못 한 채였다.

"골반이 벌어져서 걷기도 힘들었을 텐데… 애 엄마를 안으로 데리고 와서 미역국을 끓여주니까 통곡을 해요. 우리도 같이 울었어요."

그 아기들을 가슴으로 품는 일은 쉽지 않다. 매일 스물대여섯명의 아이들을 돌본다. 신생아부터 누워지내는 27살 큰 아들까지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는 아이들이다. 분유는 매달 800g들이 20통을 사야하고, 기저귀는 대·중·소가 다 필요하다. 병원비, 교육비를 합하면 매달 생활비만 2500만원 든다.

그런데 한국 언론들은 대부분 '논쟁' 자체만 보도할 뿐, 도와주자는 말에 소극적이라고 했다. 새 기부자는 매달 한명 있을까 말까다.

베이비 박스에 큰 위로는 오히려 미국에서 날아갔다. 본지가 보도했던 USC 대학생 브라이언 아이비(23)가 제작한 72분짜리 '베이비 박스 다큐멘터리'가 미국의 독립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아이비는 상금 10만달러 전액을 주사랑공동체에 기부했다. 5만달러는 송금했고, 5만달러는 미국내 주사랑공동체를 돕는 비영리재단 창단에 썼다.

30일 오전 그와 통화했다. 그는 이제 갓 스물을 넘었다. '상금으로 멋진 스포츠카를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왜?'라고 물었다. 그는 "농담이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아기가 들어오면, 베이비 박스에선 차임벨이 울린다. 가로 70㎝, 높이 60㎝, 깊이 45㎝의 작은 공간에서 아기들은 기다린다. 다시 세상으로 꺼내주기를.

▶주사랑 공동체: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 646-151 전화:(02)854-4505/ 휴대폰(016)346-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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