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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쫓는 자, 쫓기는 자

정구현/ 논설위원

"한미 양국의 끈질긴 공조수사로…."

한국 도피사범 송환 기사에 빠지지 않는 판박이 서문이다. 지난달 6일 한국에서 송환된 김민규(30)씨 관련 보도도 마찬가지였다. "FBI와 LAPD, 한국 경찰이 손잡고…."

뻔한 보도자료를 읽어내려가다가 한 구절에서 눈이 멈췄다. 그의 혐의다. 여자친구를 때리고 끓는 물을 부었단다.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이지만 도피 사범의 체포 우선 순위는 아니다. 냉혹한 살인범, 수십억을 떼먹은 경제사범에 비하면 그는 '잡범' 수준이다. 어떻게 체포됐을까, 또 왜 하필 지금일까. 궁금했다.

경찰 내부 관계자와 통화했다. 체포 뒷사정을 알고 보니 그를 붙잡은 '끈질긴 추적자'는 보석금 업체였다.



범행 후 체포된 김씨를 위해 보석금 50만달러를 보증섰던 이 회사는 보석으로 나온 김씨가 도망가는 바람에 꼼짝없이 보석금 전액을 법원에 물어야 할 처지였다. 보석금 회사 입장에서 김씨는 폭행사범이 아니라 '내 돈 떼먹은' 채무자다.

회사는 사람을 고용해 김씨를 추적했고, 마침내 도주 3년 만에 그를 찾아내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 같은 도피사범을 쫓는 보석금 회사들의 '수사력'을 취재하려 몇몇 업체에 물었다. 업체들은 전문 추적자들을 고용한다고 했다. 일명 '바운티 헌터(Bounty hunter)'로 알려진 현상금 사냥꾼들이다.

2001년 창설된 보석금 업체·바운티 헌터·사립탐정 연합체인 '도피사범체포네트워크(FRN)'와 통화가 됐다. FRN의 베니테스씨가 공개한 자료는 놀랍다. 미국내에서 매년 보석으로 풀려난 뒤 사라지는 도피범은 평균 3만1500명에 달한다. 이중 90%를 바운티 헌터들이 잡는다고 했다. 검거율이 높은 이유는 체포해야 하는 동기가 단순 명료하고 강하기 때문이다. 돈이다.

보석금 회사가 이들에게 지급하는 수고비는 통상 국내 도주자일 경우 보석금의 10%, 국외 도피범은 20%라고 한다. 호텔, 항공료 등 그외 경비도 별도로 지급한다고 했다. 송환된 김씨를 예로 들면 바운티 헌터는 10만 달러를 챙길 수 있다.

이들의 높은 검거율은 역설적으로 경찰의 무심함을 말해준다. 그 빈틈 속에서 도망자들은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착실히, 성실하게 잘 살고 있다.

국제경찰인 '인터폴'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했다. 수배중인 한인 도망자는 42명이다. 최연소는 살인범 폴 김(22), 최고령은 밀입국 알선책 손복요(72)다. 여자는 4명이고 북한 국적자도 3명 포함되어 있다. 혐의도 다양하다. 사기범과 살인범이 12명씩 가장 많고, 장기 매매, 마약밀수범, 밀입국, 신분증 위조 전문가도 있다.

그중 낯익은 얼굴을 찾았다. 최태식(61)이다. 2006년 10월14일 새벽 LA한인타운 8가와 하버드의 술집 '친구야'에서 전 여자친구 등 3명을 살해하고 도주한 살인범이다. 그날밤 사건현장에서 목격한 피는 아직도 기억 속에서 처참하다.

또, 희대의 사기범 조희팔(56)도 사진 속에서 웃고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피라미드 사기로 4억 원을 챙긴 '전설의 도망자'다.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고, 누군가의 돈을 빼앗고, 누군가의 인생을 빼앗은 이들은 여전히, 아직도 붙잡히지 않고 있다.

FRN의 모토는 '도망갈 순 있지만 숨을 순 없다'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그들의 사냥 본능을 가진 경찰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 앞으로 도피사범들의 송환 기사에서 바운티 헌터가 아닌 경찰의 '긴 노력'을 몇번이나 읽을 수 있을까.

애초부터 '한미 양국의 끈질긴 공조수사'는 정말 존재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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