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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단종애사'와 '대수양'

김완신/논설실장

'1453년 단종 1년 수양대군은 왕위 찬탈을 위해 김종서 등을 제거하는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다. 1455년 단종을 보위하던 반대파를 숙청하고 정인지, 한명회, 한확 등이 주축인 친위세력을 결집해 양위 형식으로 왕에 오른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세조)이 되는 과정은 역사소설과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대표적 작품이 이광수의 '단종애사(端宗哀史)'와 김동인의 '대수양(大首陽)'이다. 동일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지만 제목에서 보듯 두 작가의 관점은 완전히 다르다. '단종애사'는 수양의 왕위 찬탈에 희생된 단종의 편에서 기술됐다. 당연히 단종은 약자이면서 선인으로, 수양은 강자이면서 악인으로 그려진다. 작품은 단종의 비극적인 죽음을 애도하며 끝을 맺는다. 반면 '대수양'은 수양대군을 영웅으로 묘사한다. 소설 속 수양은 출중한 능력에도 어린 조카 단종을 충실히 보필하는 올곧은 인물이다. 권력에 욕심이 없었지만 시대적 상황을 거스를 수 없어 왕에 오른다.

이광수는 단종을 정통왕권으로 인정했고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의 충절에 높은 가치를 두었다. 유교적 기준에서 볼 때 조카의 왕권을 빼앗은 수양은 극악한 패륜을 저질렀다. 하지만 김동인은 수양의 계유정난을 합리화하면서 왕에 등극하는 과정을 미화했다.

결국 수양의 왕위계승은 무자비한 쿠데타일 수도 있고, 반대로 나약한 왕을 대신해 조선초기 왕권의 기반을 굳건히 다진 혁명일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역사교과서 논쟁이 한창이다. 보수측에서는 진보진영의 의견을 반영한 교과서를 비난하고 반대로 진보측은 보수성향의 역사서술에 반발하고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평가도 보수측은 '공산화를 막은 영웅'으로 진보측은 '분단의 단초를 만든 독재자'로 규정한다. 이승만에 대한 총체적·객관적 공과(功過)는 무시한 채 두 진영의 이념적 잣대로 '영웅'과 '독재자'라는 상극의 인물을 만들고 있다.

미국은 주별로 교과서 제도에 차이는 있지만 근간은 인정제(Adoption system)다. 민간출판사가 출간한 책들을 주에서 교과서로 인증하면 학교가 자율적으로 책을 선택하는 형식이다. 미국에서도 역사서술과 관련해 논쟁은 있다. 노예제, 기독교적 가치관, 흑인인권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사안이 교과서 채택과 관련해 분쟁을 가져온 경우는 드물다.

역사 해석은 학술적 관점에서 논의될 문제다. 정치와 이념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보수와 진보로 편을 가른 정치인들과 편향된 사학자들이 역사를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겠다는 사명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해방이후 극심했던 좌우대립, 민주화 과정에 대한 평가, 남북분단을 보는 시각차이 등으로 한국 근·현대사에 논쟁의 여지는 많다. 그러나 이는 사학자 이인호 교수의 지적처럼 '적어도 100년이 지나야 평가가 가능한 문제'지 지금의 정치인들이 현실정치와 연계해 자신들의 주장을 강요할 사항은 아니다. 우파와 좌파가 진영논리에 몰두해 균형감을 상실하고 역사를 정치로 해석하려는 상황에서 바른 역사교육은 실현될 수 없다.

수양대군이 왕에 오르는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한명회는 이광수의 시각에서는 교활한 모사꾼이지만 김동인에게는 탁월한 전략가였다. 충신도 간신도 될 수 있는 역사 속 인물을 바르게 자리매김하는 것은 학술적 연구와 논쟁의 결과여야 한다. 정쟁을 일삼는 정치인이나 편파적 이념을 맹신하는 사학자에게 후세들이 배워야 할 역사를 맡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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