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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우리에게도 귀신이 있다

김완신/논설실장

오래전 미국에 이민 와 뉴욕을 방문했을 때였다. 뉴욕의 도심을 걷는데 도로 곳곳에서 가면을 쓴 악마 복장의 아이와 어른이 돌아다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처음 보는 광경이라 많이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뉴욕을 갔던 그날이 바로 10월 31일 핼로윈데이였다.

한국에 살았을 때 핼로윈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거의 없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날이었다. 그런 핼로윈데이가 10여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명절'이 됐다고 한다. 미국 유학생과 외국인을 중심으로 젊은층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해 이제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주요 행사로 자리잡았다. 거기에 성인들까지 핼로윈 파티에 열광하고 있다고 한다. 유명 호텔들은 경쟁적으로 핼로윈을 테마로 파티 상품을 내놓고 있다. 참가비가 수만원에서 수십만원에 이르지만 광고가 나가면 순식간에 매진된다고 한다. 행사에서는 고급 음식과 술이 나오고 대부분 어린이들은 동반하지 못한다. 가면을 쓰고 괴기스럽게 장식된 홀에서 춤추며 먹고 마시는 파티다.

핼로윈데이는 영국과 아일랜드, 북부 프랑스에 살던 켈트족의 풍습에서 시작됐다. 켈트족은 새해가 시작되는 11월1일 전날인 10월31일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허물어져 죽은 영혼들이 지상으로 내려온다고 믿었다. 켈트족은 유령들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얼굴에 가면을 쓰고 유령복장을 했는데 이 풍습이 아일랜드계 이민자에 의해 미국에 전해져 핼로윈데이가 됐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유래를 한국의 핼로윈 파티 참가자들은 몰라도 되고 알 필요도 없다. 최근에 소개된 미국의 '신종 파티'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핼로윈데이는 미국에서는 어린이들의 최대 축제지만 한국에서는 성인들의 놀이로 변질됐다. 호텔에서는 '미국식 파티'를 내세워 문화사대주의를 자극하면서 상업화하고 있다.



문화사대주의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화는 저속한 것으로 여기고 다른 사회의 문화는 우수하다고 믿는다. 이런 식으로 한국에서 무비판적인 동경과 수용의 대상이 되는 것은 항상 미국과 서구의 문화다. 기업이나 업소명도 영어로 짓는 것이 유행이다. 한국어 이름은 세계화에 뒤처지는 느낌을 준다. 또 알 수 없는 외국어 이름이 붙여진 커피를 마셔야 현대인 취급을 받는다. 서양음악은 세련됐고 국악은 촌스럽다는 편견도 문화사대주의에 기인한다.

미국에서 핼로윈데이에는 사건과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특히 아동성추행 사건이 가장 많은 날 중의 하나다. 2년 전 리버사이드카운티 수퍼바이저 위원회는 핼로윈데이 밤에 아동성범죄 전과자들은 문앞에 등불이나 호박장식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례안을 확정했다. 교계에서도 핼로윈데이가 그릇된 종교관을 심어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자체적으로 핼로윈파티를 대신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핼로윈데이가 안전한 축제일은 아니지만 미국 아이들에게는 잊지못할 추억거리를 남긴다. 핼로윈데이는 1년 중 단 하루, 어린이들에게 밤에 다닐 수 있는 '일탈'이 공식적으로 허용된 날이다. 캔디를 얻으러 친구들과 짝을 지어 밤길을 걸었던 기억은 어른이 된 후에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런 날에 한국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1년에 한번 입는 핼로윈 커스튬 구입에 10만원 넘는 돈을 쓰고, 젊은이들은 미국에서 '유행하는' 파티라는 이유로 열광한다.

한국에도 고유한 놀이문화가 많다. 한국 근·현대 문화가 미국과 서구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제는 문화사대주의를 넘어서야 할 때다. 굳이 서양 귀신까지 불러서 놀아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에게도 귀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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